어린 아이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손과 얼굴과 주위가 엉망이지요. 그냥 음식을 흘린 것도 땅에 떨어지면 더럽다고 하며 버리는데, 아이들이 손으로 주무르고 입에 넣다가 떨어뜨리고 얼굴에 발랐다가 떨어지고 한 음식 부스러기는 부모도 주워 먹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이 부인은 남은 음식도 아니고 아이들이 그렇게 떨어뜨린 부스러기라도 먹겠다고 합니다.
그러한 부인과 달리 아마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심이 먼저 일 것 있습니다. 그런 것을 주어 먹을 거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나은 것을 가지고도 우리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삐치기 일 수이고, 형제 자매들을 미워하고 때로는 성당도 나오지 않고 하느님도 필요 없다고 한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 까요? 그것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자존심을 내세우고 자신을 치켜 세우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자신을 채우고 있고, 하느님과 관계에서도 그런 자존심을 내세우며 겸손하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 안다면 그 부스러기라도 얻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하느님의 은총의 부스러기는 세상의 어떤 큰 힘 보다도 더 강하고 더 삶을 변화시키며 영원한 삶을 향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1장의 말씀에서,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 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에게는 어리석음도 약함도 없지만 설사 있다고 해도 사람의 힘에 비교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스러기라도 얻으려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은총의 부스러기 라도 우리 힘으로 얻어 낼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흘리지 않으면 상 밑에 강아지는 음식을 흘리도록 만들 수 없듯이,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얻어낼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당신의 은총을 부어 주시는데, 그 문을 여는 것이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의 딸에게서 마귀가 나가게 한 것은 바로 그 겸손입니다. 악마는 그 무엇보다도 겸손을 두려워합니다. 겸손한 사람을 제일 싫어 할 것입니다. 인간의 겸손이 대단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 겸손으로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은 겸손은 악마를 이기는 십자가의 힘이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겸손해야 하고 어디까지 자신을 낮춰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이시면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을 닮는 것은 한계가 없는 낮춤이며 겸손인 것입니다. 한계를 두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겸손과 낮춤이 아닌 것이지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어떠한 멸시와 박해와 미움도 이겨 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항상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청하며 이 미사를 다 함께 봉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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