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힘이 있는 사람들이나 나라들은 힘으로 상대방이 말을 듣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게 말해서 되지 않으면 힘이 있기 때문에 그 힘으로 상대방을 눌러 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끄러워서 들리지 않으면 시끄럽게 하는 것을 힘으로 없애 버리던가, 아니면 다른 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면서 다른 소리들을 눌러 버리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가정안에서도 그럴 수 있고, 정치인들이 특히 그렇게 잘 합니다. 민주주의라고 하면서도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보다, 자신의 목소리가 국민들에게 들려야 한다고 더 큰소리를 내고, 자기보다 힘이 없는 이들 위에 서려고 하는 모습을 세계 어디서나 보기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스타일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원하신다면 어떤 세상의 힘도 손가락 끝으로 눌러 버리실 수 있습니다. 어떤 세상의 소리보다도 더 크게 말씀하실 수 있고 세상에 당신의 목소리만 들리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시는 모습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있는 곳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사람과 아주 친밀하게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인 것이지요. 예수님께는 우리가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아닙니다. 한 명 한 명이 다 당신께서는 소중하고 우리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말 더듬는 이와 같이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유명인이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고 했을 때 어느 누가 그 유명인이 정말 나에게 가깝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 할까요? 그 유명인이 내 이름을 알까요? 삶에 어떤 어려움이나 기쁜 일들이 있는지 알까요? 사랑한다는 말은 그냥 겉치레이고 아무런 뜻도 없는 말입니다. 그들이 그런 감정이 있다고 해도 전체를 향한 것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내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다가와서 그렇게 얘기하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면 기쁘고 정말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와 같이 예수님이 부르실 때 함께 가까이 머무르려고 하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 관계에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은 우리지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귀를 열어 주시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할 수 있도록 하셨듯이 당신의 말씀에 막혀 있는 마음의 귀와, 하느님을 찬미하지 못하고 세상의 말만 하며 굳어 있는 우리의 혀를 풀어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가락을 우리 귀에 넣으시고 침을 발라 혀에 대 실 수 있도록 친밀한 가까움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뜻이 세상이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으로 우리 삶에 드러난다고 해도 믿고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합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에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 곁에 가까이 머물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며 그 누구보다도 주님과 가까이 머무르셨던 성모님께 세상의 많은 유혹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전구해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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