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어떤 결심이나 해야 할 것을 생각해 놓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결심이나 일이나 행동이든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가도록 하는 것은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으면서 우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되새깁니다.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지만, 우리의 몸이 흙이 될 때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살아가는 것도 우리 육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세상에서 하느님께 돌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삶을 항상 살아가야 하지만 세상 삶안에서 잊고 살아가기 쉽기 때문에 매년 이렇게 사순 시기에 들어서며 가던 길을 멈추고 주님을 향해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오늘 요엘 예언서에서 주님께서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며 마음을 다해서 당신께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냥 겉만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주 너의 하느님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주님께 돌아서는 길은 그냥 겉으로 사순 시기 동안 어떤 것을 하지 않는 식의 변화를 통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변하기 위해서는 큰 결단이 필요하고 마음을 찢는 고통과 희생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쉽게 되는 것이었으면 처음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돌아서지도 않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쉽지 않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아니 선택이 있긴 하지만 살기 위한 선택은 하느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을 보면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하시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서 정말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빈다고 하시는 것은 사도 바오로 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가 당신과 화해하는 것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시는가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셨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죄를 모두 그리스도께서 짊어 지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누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죄를 대신 짊어 질까요? 세상의 법에는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보통 누구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죄인이 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영화를 보면 조폭들이 두목을 대신해서 감옥에 갔다 오고 대신에 원하는 것을 받아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우리에게서 필요한 것도 아무것도 없으신 분인데 오로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마음을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자선을 베풀거나, 기도를 하거나 단식을 할 때나 그 열매는 언제나 하느님께 돌아가는 모습인 것이지 절대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먼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먼저 하느님께 돌아간다면 당연히 그 삶에서 드러나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삶은 형제 자매들에게 돌아가는 삶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많은 형제 자매들과 등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다해서 돌아가는 사람이 형제 자매들에게서 멀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형제 자매들과 관계를 평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순 시기가 은총의 시기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 돌아가 그 은총안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 삶안에서 형제 자매들을 그 누구라도, 예전에 어떤 관계였다고 해도, 사랑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해 나갈 수 있다면 이 사순 시기 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는 진정으로 은혜로운 때이며,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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