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오랜 신앙 생활을 해오셨기 때문에 에스테르 왕비의 이름만 들어도 어떤 내용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자세히 모른다고 해도 오늘 독서에 나오는 왕비의 간절한 기도 내용만 봐도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 내용은 우리에게 에스테르 왕비의 믿음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맞을 때가 있고,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 달려 가곤 합니다. 그리고 왕비와 같이 간절하게 기도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히브리어 원본의 에스테르기에 보면 ‘하느님’ 이나 ‘주님’ 이라는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독서에 들었던 하느님을 향한 에스테르 왕비의 간절한 기도 내용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번역되었을 때 더해진 것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스라엘과 왕비가 처했던 위험과 결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원본에 ‘하느님’, ‘주님’ 이라는 단어가 전혀 없었다면 왕비는 과연 어떻게 누구를 향해 무슨 말로 기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한 것입니다. 왕비는 삼일간의 철저한 단식으로 자신의 온 삶을 하느님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굳은 결단으로, 부름받지 않은 어전으로 나아가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에스테르 왕비의 이 모습은 우리에게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역사의 이면에서 이미 일하고 계시며,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본질을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입술로만 주님을 찾는 것을 넘어, 삶의 자리에서 간절히 찾고 직접 행동으로 문을 두드리라는 초대입니다. 에스테르 왕비가 왕궁의 안락함을 버리고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갔던 그 결단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문을 두드리는' 기도의 완벽한 모범인 것이지요. 때로는 기도 한다고 하면서 말은 많이 하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우리들에게 어떤 기도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시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 밖에서 크게 소리만 친다고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시지 않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고 말씀하십니다.
에르테르 왕비는 자신만 살자고 단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두드림은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자신만 살자고 했다면 왕비를 포함해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사자의 굴에 던졌기 때문에 그 기도가 하느님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과연 누구를 위해 소리치는 것이고, 찾고 두드리는 것일까요? 특히 이 사순시기의 기도와 행위는 나의 신앙과, 나의 가족과, 나의 삶을 위한 것일까요? 나 만을 위한 두드림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특히 에스테르 왕비의 모범을 보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의 기도와 행위가 형제 자매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에스테르 왕비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결심으로 형제 자매들을 위한 삶이 될 수 있도록 한다면, 하느님께서 당신께 입으로만 부르짖기 보다 마음과 행동으로 당신께 의지한 에스테르 왕비의 기도를 들어 주셨듯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 죽음을 이기고 부활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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