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우리는 저마다 어떤 단식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아직 결정하지 못하신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단식이 어떤 것인지 함께 묵상해 봅시다.
옛 사막의 교부들 이야기 중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젊은 수도자가 오랜 기간 동안 빵과 물만 먹으며 엄격한 단식을 지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철저한 고행이 무척 자랑스러워 지혜로운 원장 수사님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원장님, 저는 이토록 철저하게 단식하며 고행했습니다." 그러자 원장 수사님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래, 훌륭하구나. 그런데 그 단식 기간 동안 굶주린 이들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었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힘들어하는 형제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이라도 건넸느냐?" "아니요, 제 기도와 고행에 집중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원장 수사님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형제여, 자네는 하느님을 위해 단식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굶은 것뿐이네."
우리는 흔히 단식이라고 하면 무언가를 끊어내는, 즉 '무엇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몸을 비워내는 절제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 자매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앞에 말씀드린 젊은 수도자처럼 그저 내 몸만 괴롭히는 고행에 머문다면,하느님께서 과연 그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은 소극적인 절제를 넘어,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때, 단순히 남을 돕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꺼이 타인을 위해 내 것을 내어주고 사랑을 베푸는 바로 그 순간, 우리 마음속에 깊게 패어 있던 죄의 상처들이 아물고 치유되는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무리 고해성사를 보고 죄에서 멀어지려고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치유는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진정한 치유는 사랑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의 단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훗날 신랑이신 예수님을 빼앗기면 제자들도 단식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단지 신랑을 잃음으로서 오는 고통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가 사순 시기에 해야 하는 진짜 단식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그 '사랑의 길'을 우리도 똑같이 걸어가겠다는 다짐입니다. 나를 채우려는 이기심을 굶기고, 이웃을 향한 자비를 배불리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번 사순 시기에는 '무엇을 참아볼까'에 머물지 않고 '어떤 사랑을 베풀까'를 먼저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특별하고 거창한 희생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가족에게 건네는 인내로운 말 한마디, 힘들어 하는 교우의 손을 잡아주는 그 조용한 위로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내 이기심을 비워낸 그 자리에 이웃을 향한 자비와 사랑을 가득 채워 넣는 참된 단식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 청하며 이 미사와 사순 여정을 봉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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