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이 드물게 내렸고 환시도 자주 있지 않았다.”
이 구절을 읽으며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시대에는, 지금과 같이 입을 다물고 계셨구나.’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하느님께서 어느 시대에는 말씀을 아끼시고, 어느 시대에는 수다스러우신 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말씀을 건네십니다.
집안이나 어디에서 우리는 전화기를 WIFI 에 연결에서 씁니다. 무선연결이 되기 때문에 편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화기에 비행기 모드를 활성화시키면 보통 그 WIFI가 끊어집니다. 신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화기에서 받지 않는 것이지요. 즉, 말씀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 비행기 모드를 활성화 해서 연결이 안되는 것이지요.
어린 사무엘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사무엘은 주님의 부르심을 세 번이나 듣고도 그것이 하느님의 목소리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엘리 사제에게 달려가 "저를 부르셨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귀는 열려 있었지만, 비행기 모드를 아직 끌 줄 몰라서 아직 하느님의 전파와 연결되지 않았기에 그는 '소리'는 들었으나 '말씀'은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 사제의 도움으로 사무엘이 태도를 바꾸었을 때, 반전이 일어납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이 짧은 고백, 즉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라는 자세를 갖추자마자, 영혼에 활성화되어 있던 비행기 모드를 끄는 방법을 배우자 마자 모든 것이 바뀝니다. 드물던 말씀은 사무엘에게 쏟아졌고, 하느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시며 그의 말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사무엘의 '듣는 귀'가 열리자 세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도 이와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을 쫓아내시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입을 막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자들과 군중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열광적으로 찾으며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외치지만, 그 속내는 병을 고쳐주고 기적을 보여주는 '능력자'를 찾고 있을 뿐, 십자가를 지러 오신 '구세주'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기대와 욕심으로 귀가 막힌 사람들에게, 섣불리 선포된 진리는 오히려 오해만 낳을 뿐입니다.
교우 여러분, 혹시 우리는 살아가면서 "왜 하느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까?", "왜 나에게는 말씀해 주지 않으실까?" 하며 하느님의 침묵을 탓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하느님이 침묵하시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내 욕심, 내 계획, 내가 듣고 싶은 대답만 고집하고 있다면 우리는 엘리에게 달려가던 사무엘처럼 엉뚱한 곳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추어 내 영혼에 비행기 모드가 실행되어 있는지 점검합시다. 그리고 사무엘처럼 겸손하게 고백합시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오랫동안 침묵이라고 여겼던 그 시간들이 사실은 나를 향한 하느님의 끊임없는 속삭임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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