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 여러분,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따라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날입니다. 지난 몇일 동안 눈보라와 바람이 매섭게 부는 추운 겨울에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난로’ 에 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요?
한번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날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넓은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성당과 달리 머리 위에 사방에서 따뜻한 공기가 나오는 방이 아니라, 예전에 학교 교실에 있었던 것과 같이 그 방 한가운데에는 빨갛게 달아오른 석탄이 타오르는 아주 큰 난로가 놓여 있습니다. 그 난로는 따뜻한 열기와 빛을 뿜어내고 있지요.
그런데 그 방안에 사람들의 반응이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난로 바로 앞에서 "아, 정말 따뜻하다! 살 것 같다!" 하며 행복해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방구석 춥고 어두운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덜덜 떨면서 "여기는 왜 이렇게 추운 거야? 뭐가 따뜻하다는 거야?" 하며 불평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따뜻한 난로의 불을 쬐고 있던 사람들은 답답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겠지요. “난로에 가까이 오면 따뜻합니다.”
난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온기를 느끼는 '기쁨'은 오직 난로를 향해 걸어 나간 사람만의 것입니다. 난로가 아무리 뜨거워도, 내가 구석에 숨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온기는 나에게 닿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먼저, 춥고 어두운 구석을 선택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헤로데입니다.
헤로데는 구원을 거의 손에 쥐고도 자신의 이기심으로 놓아 버린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왔을 때, 그는 율법 학자들을 통해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날지 정확히 알아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이라는 정확한 '지도'를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난로가 어디 있는지, 빛이 어디서 솟아오르는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동방박사들에게 "가서 찾거든 나에게도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는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선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왕권과 욕심이라는 어두운 구석에 머무르는 것을 '선택' 했습니다.
빛이 오는데도 고의로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 그의 선택은 결국 죄 없는 아기들을 죽이는 끔찍한 비극을 낳았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움직이지 않는 믿음은 이렇게 차갑고 무서운 것입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도 비극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빛을 향해 과감히 움직인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동방박사들입니다. 그들은 편안한 고향을 떠나, 위험한 여정을 감수하며 별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억지로 떠밀려 가는 마지못한 걸음이 아니었습니다.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내디딘 기쁨의 행진 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초라하고 가난한 아기 예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들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지만, 사실 그들이야말로 더 큰 선물을 받고 돌아갑니다. 바로 '하느님을 만난 기쁨'입니다. 난로가 가까워지면 따뜻해지듯, 빛이신 주님께 다가가면 우리 마음은 기쁨으로 뜨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시편의 후렴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왕을 경배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찾아가야 합니다. 옥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옥좌에 앉아 기다리시기 보다 역사상 그 어떤 왕보다 우리 삶 깊숙이, 아주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마치 우리 방 한가운데 놓인 난로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까이 계신 예수님도, 우리가 그분을 향해 몸을 돌리고 발을 떼지 않으면 만날 수 없습니다.
혹시 지금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으십니까? 온기가 없는 차가운 마음에 우울감이 드십니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음의 평화를 빼앗아 갑니까? 마음의 상처가 생겼다고 그 상처만 부둥켜 안고 형제 자매들을 미워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잠시 멈추어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는 지금 난로를 향해 가고 있는가, 아니면 구석에서 난로가 내게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이미 방 한 가운데 난로가 있는데 다가갈 생각은 하지 않고 난로가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기를 기다린다면, 절대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어둠 속에 있는 자신이 변하지 않는데, 내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데 갑자기 빛이 쏟아지고 평화와 기쁨이 샘솟을 수는 없습니다. 기쁨이 없다면,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나만의 동방'을 떠납시다. 나태함이라는 동방, 이기심이라는 동방, 절망이라는 어두운 구석을 떠나 빛이신 주님께로 한 걸음 움직입시다.
거창한 움직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미사 시간에 조금 더 일찍 나와 기도를 바치는 움직임, 미워하던 이웃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움직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지갑을 여는 작은 움직임들이 바로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발걸음입니다.
그렇게 움직일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보다, 주님이 주시는 그 따스한 빛과 기쁨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빛을 향해 움직이는 여러분의 모든 발걸음 위에 아기 예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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