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는데 그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눈을 감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어두운 곳에 빛이 들어올 때 밝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밝은 곳에서 자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 가리개를 씁니다.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게 눈을 다른 것으로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고 가린 것은 아닙니다. 분명하게 의도 적으로 빛을 보지 않기 위해서 가린 것이지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가리개로 가리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속에 있는 이들에게 빛으로 오셨고, 요한은 그 빛을 증언하기 위해서 먼저 왔습니다. 사람들이 눈 가리개를 벗어 버리고 빛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어둠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붙들고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한 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이라는 시간의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방금 우리는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 단순히 눈을 감았기 때문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가리개를 썼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마주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굳이 그 눈가리개를 찾아 썼을까요?"
어둠은 때로 우리에게 거짓된 평안을 줍니다. 빛이 비치면 방 안에 쌓인 먼지가 보이고, 내 옷에 묻은 얼룩이 드러납니다. 나의 부족함, 나의 죄,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이웃의 고통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마주하고 치워내고 씻어내는 일이 두렵고 귀찮아서, 우리는 차라리 '어둠'이라는 안대를 쓰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숨어버리곤 합니다.
올 한 해를 되돌아봅시다. 주님께서는 지난 1년 동안 끊임없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비추려고 하셨습니다. 용서해야 할 때 자존심이라는 가리개를 썼고, 나누어야 할 때 욕심이라는 가리개를 썼으며, 사랑해야 할 때 무관심이라는 가리개를 쓰고 빛을 차단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회개하라"는 소리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쳐라"는 윤리적 호소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발 그 눈가리개를 벗어 던져라! 빛이 여기 와 있다!" 라는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어둠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고집,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느님과 멀어지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눈가리개를 강제로 잡아 채시는 폭력적인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가 스스로 가리개를 벗고 당신을 바라보기를 기다리시는 자비하시고 인자하신 빛이십니다.
이제 몇 시간 뒤면 우리는 새로운 해를 맞이합니다. 묵은해를 보낸다는 것은 단순히 달력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묵은 어둠과 낡은 가리개를 벗어버리는 결단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빛은 우리를 심판하여 눈멀게 하는 빛이 아닙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어두운 길을 밝혀주며,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따스한 빛입니다. 내가 쓴 가리개를 벗을 용기만 낸다면, 그 빛은 즉시 우리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입니다.
이 미사 시간, 우리 각자가 꽉 붙들고 있던 마음의 눈가리개를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주님, 제가 빛을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합시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새해에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 빛을 이웃에게 반사하는 '빛의 자녀' 로 살아가는 은총의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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