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구세주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오늘 이 거룩한 미사에 함께하신 여러분의 가정에, 어둠을 몰아내는 아기 예수님의 따뜻한 빛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130장을 보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기 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림 시기를 지내면서, 여러분들의 영혼도 그렇게 아침을 기다리는 파수꾼의 간절함 보다 더 간절하게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고대 사회에서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의 밤은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견디기 힘든 추위와의 싸움이었고, 언제 적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공포와의 싸움이었으며, 무엇보다 끝을 알 수 없는 지루한 어둠 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직무였을 것입니다.
모든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유독 깨어 있어야만 하는 존재.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아도 눈을 부릅뜨고 멀리 내다 보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무엇일까요? 성벽을 지키는 무기일까요? 추위를 이길 수 있는 두꺼운 외투일까요? 아닙니다. 그가 가장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 ‘빛’입니다. 어둠을 걷어내고 저 멀리서 주인이 돌아오신다는 신호, 새벽의 빛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들어 보아라.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다 함께 환성을 올린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다. “
이 장면을 상상해 보면 우리는 파수꾼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립니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온다"는 보고가 아닙니다. 지긋지긋한 어둠이 끝났다는 안도감, 마침내 구원이 도착했다는 벅찬 감격이 터져 나오는 기쁨의 ‘환성’입니다.
그러한 파수꾼의 모습에서 지금 세상으로 눈을 돌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밝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도시 번화가에 가야 네온 싸인들이 화려하게 켜져 밤을 밝히고 있었지만 지금은 전력을 많이 쓰지 않는 LED 전구를 통해서 도시중심 만이 아니라 온 동네가 빛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인공 빛입니다. 이맘때 동네 집들이 달아 놓은 장식들을 보면, 예전에는 전구를 몇십 개를 달았지만 지금은 몇백 개, 몇천 개를 달아 놓고 있습니다. 제대 위에 있는 큰Christmas tree 만 해도 거의 1000개 가까운 전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리고 우리의 손에는 하루 종일,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빛이 들려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밝아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더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우울과 불안, 미움과 갈등이라는 어둠은 화려한 LED 조명으로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밝은 인공의 빛들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여, 내 옆에 있는 이웃의 아픔을 보지 못하게 하고, 나 자신의 공허함을 감추기에 급급하게 만듭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요한 복음은 선포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오늘 오신 아기 예수님은 눈을 찌르는 날카로운 레이저 불빛이 아닙니다. 그분은 한겨울 추운 방의 fireplace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생명의 빛’입니다. 이 빛은 어둠을 공격하여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그 자리를 희망으로 채우는 빛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2000년 전 베들레헴의 마구간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탄생하셨습니다. 빛이 오셨으니, 이제 우리의 신분도 바뀝니다. 우리는 이제 어둠 속을 헤매는 자가 아니라, 빛을 먼저 본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파수꾼의 역할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두 가지입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보는 것’과 ‘알리는 것’입니다.
먼저 희망을 보는 눈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모든 것이 힘들다고 하며, 경제도 어렵고 평화도 없다고 하며 어둠을 이야기할 때, 신앙인인 파수꾼은 그러한 세상의 어둠에 말려 들어가지 않고 달라야 합니다. 파수꾼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리고 사랑이 미움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표징을 먼저 발견해 내야 합니다.
파수꾼 스스로가 빛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달이나 거울처럼, 예수님의 빛을 받아 반사하면 됩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그 곁을 지키며 들어주는 것, 그것이 파수꾼의 역할입니다. 직장에서 누군가 소외되고 있습니까? 그에게 따뜻한 말과 커피 한 잔을 건네는 것, 그것이 빛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둠속에 있는 이들에게 빛이 오심을 선포 하는 것이 바로 오늘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아름다운 발” 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가정, 일터, 학교—라는 성벽 위에 세워진 파수꾼들입니다. 때로는 그 자리가 외롭고 춥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빛이 이 세상에 오신 그 밤에 어둠은 패배했습니다. 가장 낮고 약한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의 어떤 어둠보다 강력한 빛을 가져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당 문을 나서 세상으로 돌아가실 때, 여러분의 얼굴에 이 성탄의 기쁨을 가득 담으십시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여러분의 삶으로 이렇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보십시오, 우리에게 빛이 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 모두에게 성탄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