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상황에서 양을 잃은 목자는 당연히 잃은 양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찾으러 길을 나서기 전에 나머지 양들이 안전하도록 우리에 데려가 두거나, 다른 목자들에게 부탁하거나 할 것입니다. 그냥 산에 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양들이 아무리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목자가 돌아왔을 때 그대로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산에는 양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을 공격하는 다른 짐승들이 있습니다. 도둑이 있을 수도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하시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런 질문을 하실까요? 그냥 하느님께서는 누구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며 길을 잃은 사람을 찾으러 가시는 분이라고 하시면 되는데, 양 백마리를 돌보는 목자의 얘기를 하시며 제자들의 생각을 물으십니다. 그 이유는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서 떠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보통 사람들은 밋밋한 것 보다는 충격적인 것을 더 기억합니다.
당연히 제자들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만 산에 남겨 둔 채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이미 아시기 때문에 놀랍지 않지만 처음 듣는 말이었다면 당연히 아흔아홉 마리를 위해서 한 마리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한 마리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시니, 충격적인 것이지요. 자신들의 생각과 너무나 다른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그 만큼 하느님께 우리 각자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잘 해서도 아니고, 죄가 없어서도 아니며,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서도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께 당신 아드님의 목숨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하나를 위해서 다른 아흔아홉의 생명을 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한 마리의 양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상상이 가십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 가는 것은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가치 있게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판단하는 가치에 따라서 스스로를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이 하느님께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구원되기를 바라시는지 알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응답할 때까지 계속해서 찾고 부르시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서에서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고 말하며 세상의 가치를 우리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다 지나간다고 말하듯이 우리의 삶의 가치를 잠시 지나가는 것에 두지 말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모습으로 우리가 자신과 형제 자매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은총 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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