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를 보면 옛날부터 무엇을 하든 인맥이 중요한 사회입니다. 누구 누구의 아들이나 딸, 친척관계, 학교 선후배 관계, 출신 지역 등 하고자 하는 일에 필요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취직도 잘되고, 사회에서 어떤 이득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지요. 실력이 아니라 누구를 알기 때문에 취직이 되고 사회에서 이득을 얻는다면 그것을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유다인들도 그런 인맥을 중요시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아니라 그 인맥을 믿었던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법을 지키지 않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잘못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가족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시며 인맥을 믿던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어 버리십니다. 그 말씀은 유다인들에게 정신차리라고 하는 말씀도 되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는 그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더 하느님과 가까운 분이셨습니다. 성령께서 당신 안에 머무르셨고,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 보다 더 가까울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누구보다도 충실 하신 분이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라는 인맥에 믿음을 두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의지하고 믿으셨습니다. 그 충실함은 딸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부모님에게서 어릴 때부터 배우신 것이 아닐까요? 부모님인 안나와 요아킴도 하느님께 충실하셨던 분들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딸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입니다. 성전에 사제나 율법학자나 다른 고위급 인사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쓰일 수 있도록 하느님께 맡긴 것이지요.
사람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인맥을 쌓고 사람에게 의지하려고 합니다. 하느님께 의지 해야 하고 하느님께 삶을 봉헌해야 하는데 오직 세상의 삶을 위해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 봉헌된 삶은 무엇을 뺏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당신의 은총으로 꼭 당신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초대하십니다. 그러한 삶이 사람에게 가장 평화롭고 기쁜 삶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러한 삶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당신의 뜻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성모님도 단순히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만 선택 받으신 것 만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가 되시기 위해서 선택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협조하시며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가 당신의 아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통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주님 구원 사업에 드린 것이지요.
우리에게 어머니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성전에서 봉헌된 성모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우리 삶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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