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안정된 생활을 원합니다. 그리고 주거지는 그러한 생활에 기반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고, 아마 사람들이 돈으로 사는 것 중에 서 가장 비싼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쟁이나 자연 재해로 난민들이 생겼을 때 그들을 돕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이 계속 머물 수 있는 집은 아니더라도 잠시라도 Privacy 가 있고 지낼 수 있는 Shelter 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여행을 가거나 가족들과 휴가를 가더라도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그것이 텐트이든 Airbnb 나 호텔이든 지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야 그곳을 중심으로 다른 계획들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시며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자다가 깨어나 그 광경을 본 제자들을 얼마나 놀랬을까요? 그리고 베드로가 한 말은 어떻게 보면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생각이 아닐까요? 보통 사람이 많이 놀랐을 때 내 뱉는 말은 이런 저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기 때문에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그대로 말 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앞날을 알지 못하는, 특히 예수님께서 죽음에 관해서 말씀하시고 있었고 그들도 이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도 계속 해서 불안해하며 좀더 안정된 것을 원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보고 너무나 좋아 보여서 그들이 머무를 초막을 말하며 그 상황에 계속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십자가를 피한 안정된 삶을 통한 모습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한 죽음과 부활의 영광인 것이지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그래서 우리에게 큰 희망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다고 해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에게 그 고통은 분명하게 당신께서 보여주신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는 삶은 세상에서 안정된 삶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산에서 내려가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산 위에 머무르면서 초막을 짓고 먼저 안정된 삶을 찾습니다. 그래서 믿음도 먼저 삶이 안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성인들 중에 먼저 편하고 보기 좋은 삶으로 바탕을 깔아 놓고 신앙 생활을 한 분들이 있을까요? 물론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성인들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다 포기하든지 아니면 다 내어 놓고서 주님을 따랐습니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라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신을 버려야 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당장 앞이 보이지 않고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해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귀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세상이 아니라 멸망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에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세상에서 편안함과 안정만을 찾는다면 세상에서 그것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영원히 잃게 될 것입니다.
만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리 큰 고통이 안정된 삶을 빼앗아 간다고 해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거룩하게 변모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의 부활의 영광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믿는다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세상의 안정된 삶에 의지한다면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잘 성찰해서 세상의 집을 추구하지 않고 영원한 집을 희망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에 주님의 모습대로 변화 될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며 이 미사를 봉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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