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 물론 필요에 따라서 앞에 나서서 봉사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뒤에서 보이지 않게 기도하며 봉사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두 모습 다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모습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떠한 봉사하는 모습이라고 해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느님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봉사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지 앞에 서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을 보면 많은 이들은 하느님 앞에 서서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이 앞에 서려고 합니다.
오늘 민수기의 말씀에서 모세는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가 많이 나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이집트의 삶을 돌아보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광야의 여정을 생각해 보면 인간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실 물을 내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는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를 합니다. 그의 말을 보면 화가 나 있었고, 보통 우리도 화가 나면 보이는 것이 없고 생각을 바로 하지 못할 때가 있지요. 그래서 자신을 하느님 앞에 내 세우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하느님께서 물을 내어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백성들에게 ‘우리가’ 물을 나오게 해주겠다고 하며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칩니다.
그의 벌이 좀 과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그를 통해서 자신을 하느님 앞에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하느님께서는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대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일치하는 것은 분명히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가오는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반대하며 자신의 뜻을 하느님 앞에 내세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탄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걱정이 되고 예수님을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의 뜻을 내 세웠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아는 행복한 사람에서 하느님의 뜻을 반대하는 사탄의 모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따를 수 있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힘에만 의지하면 계속해서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세우겠지만 그 은총의 의지하면 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고 해도 주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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