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모 성월인 5월의 마지막 날에 지극한 사랑으로 당신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성모님 방문 축일을 지내며 우리 자신을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봉헌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자신을 봉헌한다는 것은 원래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 즉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을 하느님께 드리며 당신의 뜻 안에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집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나와 봉헌한다는 것은 이 봉헌의 삶의 길이 혼자 가는 길이 아니고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며 또한 서로의 증인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엘리사벳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서둘러서 길을 떠나 엘리사벳을 찾아 갑니다. 당신께서 천사의 방문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임신하게 되었고, 지금으로 보면 세대 차이가 심하게 나기도하고 살아온 과정이나 겪은 일들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생각이나 느낌을 나누며 함께하기 힘든 관계로 볼 수 있지만, 하느님안에서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같은 길에 있던 엘리사벳과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고 나이가 많던 엘리사벳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3개월이라는 시간을 지내면서 하느님께서 당신들에게 하신 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을까요? 물론 우리가 그 내용을 다 알 수 없지만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의 말과 성모님의 Magnificat 을 보면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는 엘리사벳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모님께서는 혼자 계실 때도 항상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삶을 사셨겠지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당신을 위해 하신 일들을 찬미하는 것은 두 분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분명히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지요. 물론 성모님께서 어떤 확증이 필요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앞날을 알지 못하는 일과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서로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봉헌된 삶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삶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나고 하느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우리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보답이나 조건을 보고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에 맞게 쓰시도록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길에 혼자 서 있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경험으로 아시듯이 외로움과 고통은 혼자 끙끙거리며 앓고 있는 것 보다, 형제 자매들과 함께 나눌 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큰 힘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도 형제 자매들과 관계 안에서, 그 만남들 안에서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함께 하는 여정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확인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오늘 로마서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서로 사랑하며 함께 주님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5월을지나 예수성심 성월인 6월로 넘어갑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아드님의 마음과 하나였던 것 같이 당신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아드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어머니께 당신과 엘리사벳의 모습과 같이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함께 주님께 찬미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거룩하신 예수님의 성심께 의탁하는 은총을 전구해 주시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구원의 길은 개인의 길이 아닙니다. 각자 알아서 혼자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의 성심에 모든 것을 의탁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하실 것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서로 존경하며 깊이 아끼는 공동체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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