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서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것을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면 신자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자기 소유를 주장하면서 살아 갑니다. 물론 지금과 다른 세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의 소유를 포기 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들이라는 사람들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믿었고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분명하게 믿었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곧 돌아오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들도 그때 가 언제 인지 몰랐고, 우리도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그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는 내일이 될 수도 있고, 한달 후가 될 수도 있고, 일 년 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 인지 모르기 때문에 적당히 믿으며 살아가도 된다가 아니라, 언제 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희망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가까워 왔다는 것을 아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단 하루도 당신을 위해서 보내시지 않고, 쉬어야 한다는 의사들의 말을 듣지 않으시며 끝까지 하느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기시고 당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충실하셨던 것이지요.
시에나의 성녀 카나리나도 세상의 삶을 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신 분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여인으로서 사회 활동이 제한 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 매이지 않고 교회안에서 하느님께서 뜻하신 일에 충실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삶의 모든 것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교황님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세상안에서 활동하셨지만 세상에게 마음을 내주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교회의 쇄신을 위해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에 충실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바람의 방향이나 속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듯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정할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그래서 바람을 맞서기 보다 바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따라서 동참하는 것입니다. 니코데모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질문을 하듯이 우리 또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고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의 부르심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께서도 당신께서 세상에 나가 교회를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기 때문에 주님의 은총으로 성인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된다 안된다 판단하기 전에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언제나 성모 어머니와 같이 ‘Fiat’ 으로 응답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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