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삶은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죽었고 부활했다고 사도 바오로는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그냥 지나치듯 만난 것 만이 아니라 그분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우리의 삶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에게 예전에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며 두려워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일반인 들이 그를 알아봤는데도 두려워서 모른다고 했지만 이제는 유다인들의 지도자들, 대 사제 앞에서도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다녔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하신 일에 동참하며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마 누가 봐도 예수님의 부활전의 베드로와 부활 후의 베드로는 같은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다른 사람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예전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이었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위한 삶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러한 변화는 예수님께서 한번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에서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제자들은 예전의 삶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것은 그 길은 이제 그들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내려 잡은 153마리가 말하는 것은 이제 세상으로 나가 모든 이들을 예수님께 끌어 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부활 하신 후에 여러 차례, 7 번이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렇게 지속된 만남을 통해, 그리고 성령의 강림으로 제자들은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고 두려움 없이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세상의 삶에 치우치려는 유혹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만남이 없는 이들은 쉽게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예전의 삶을 다 놓은 것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놓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삶에 필요한 용기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 어느때 보다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은 용기가 필요한 삶입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배척당하며 사회에서 내쳐지는 것을 보기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회안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기 위해서 믿음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매일의 삶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충실한 기도 생활과 형제 자매들을 섬기는 겸손으로 주님과 하나 될 때, 그 누구도 사도들의 길을 막을 수 없었듯이 주님과 함께 새로운 삶으로 가는 우리의 길을 막지 못할 것이며, 죄의 용서를 통한 구원은 모든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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