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살아가다 보면 가끔 형제 자매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관계 안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를 들어 내가 지금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어서 꼭 어떤 도움이 필요한데,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와 같지요. 그는 나병환자라는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고통 중에 있었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깨끗이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나병을 치유해 주시지요.
우리도 그렇게 가끔 예수님께 가서 도움을 청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병이나 가족이나 친구들의 병 때문일 수도 있고, 가족의 불화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등, 여러가지 이유로 예수님께 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할 것이 그런 것 말고는 없을까요? 아마 그 외에 많은 일들은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우리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 닫고 작아져야 합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가 말씀하신 작은 길인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 보다 더 큰 사람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무거운 사람을 들어 올릴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버틴다면 더 들어올리기가 힘들지요. 소화 데레사 성녀에게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께 들어 올려 지는 것이고 예수님의 팔은 엘리베이터가 사람을 높은 곳을 들어 올리듯이 작은 우리를 당신의 품 안으로 들어올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들어 올리시지 못하게 무거워지는 것은 우리의 완고함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교만이 우리를 채울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작은이라면, 우리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자꾸 도움을 청하면 처음에는 잘 도와주다 가도 나중에는 귀찮아서 짜증이 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언제나 당신께 와서 도움을 청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한 순간도, 어떤 작은 일도 당신과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작은 것 하나라도 예수님께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에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마음이 완고해 주님께 반항하고 시험한 것은 하느님 없이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신을 섬기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손을 잡고 이끄시는 대로 따라오며 의지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작아지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마음이 빗나가 하느님의 길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안식처에,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우리의 삶에서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도록 항상 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는 예수님의 손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있어도 부모가 아이를 안고 위험한 곳을 지나가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안아 올리시고 우리의 영혼을 위협하는 세상의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