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배를 타고 건너편 벳아이다로 가게 하신 시간부터 새벽에 그들에게 오신 시간 까지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돌려보내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 가셨다가 내려오신 것이 저녁이 되었을 때라고 했고, 새벽에 제자들에게 오셨으니 못해도 8시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요? 그 동안 먼저 건너가 있어야 했던 제자들이 호수 가운데 밖에 가지 못했다는 것은 아마 계속되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싸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몸과 마음이 지쳤을까요? 바람이 계속해 불면 노를 젓는 것을 멈출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치면 잘못 판단할 수 있고,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게다가 새벽에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봤으니 아마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요. 그래서 두려움에 그들은 비명을 지릅니다.
복음은 그들이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완고해졌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대단한 기적이 일어났을 때 기적에 놀라 그것만 바라보며 그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은 보지 않고 있었다면 당연히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적을 일으키신 분인데, 기적이 더 중요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그런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체험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으로 먹을 것을 나눠주며 직접 오천명을 먹이고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맞바람과 싸우며 지쳐 있었다고 해도, 자신들의 힘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요한 1서의 말씀에서 같이 두려움을 쫓아 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복음의 말씀대로 마음이 완고 해져서 믿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안에도 제자들이 싸워야 했던 바람과 같은 일이 생깁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 간에 불화, 병이나 사고로 찾아오는 고통 등, 우리가 호수를 건너가는 것을 막는 거센 바람들이 불어 닥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면, 요한 1서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도 하느님 안에 머문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아마 제자들과 같이 지치고 두려워 제대로 보지 못하며 비명을 지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순간에도, 기적이 일어나거나 극심한 고통 중에 있다고 해도, 우리의 마음이 그런 것에 따라서 요동치지 않기 위해서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안에서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의 제자들과 같이 많이 부족하지만 주님의 은총은 당신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어 가도록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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