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멀리건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을 쳤는데 아주 못 쳐서 동반자들의 동의 아래 똑 같은 자리에서 다시 한번 치는 것이지요. 원래 정석으로 치기 위해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아무튼 처음에 친 것은 없던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장기나 바둑 같은 것에서도 잘못 둬서 수세에 몰렸을 때 한 수 물리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창세기의 말씀에서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나무 열매를 따 먹고 하느님으로부터 숨었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알고 계셨을 것이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오셔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십니다. 그리고 아담은 하와의 탓을 하고, 하와는 뱀의 탓을 하는 것을 보게 되시지요. 아마 그것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죄는 죄를 낳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들은 하느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며 죄를 지었고, 아마 하느님께서는 다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멀리건을 주실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죄를 없던 걸로 하시지 않고, 오히려 죄에서 구원해줄 분을 약속하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 않을 수 없으시기 때문에, 아마 없던 걸로 하고 다시 기회를 줬다고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를 짓고 용서를 청하고도 또 가서 죄를 짓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용서를 받았다고 해도 그 죄로 인한 상처가 남는 것은, 용서는 이미 엎어진 물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이 다시 주워 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구를 때려서 상처를 냈는데, 가서 고해성사를 보고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내가 형제에게 낸 상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과 같이 모른척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 새로운 물로 채워 주시지만 엎어진 물은 엎어진 대로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미 엎어진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형제 자매들에게 용서를 청해야 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집에서 물을 엎었다면 그냥 새로 물을 컵에 따라서 마시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과 같이 엎어진 것은 그냥 두지 않습니다. 언제나 엎어진 물을 걸레로 닦아서 말려야 하는 것이지요. 그와 같이 진정한 회개의 삶은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셨다고 엎어진 물을 그냥 모른 척하지 않습니다. 나무에 올라갔던 자캐오가 자신의 죄로 인한 이득이 있다면 그것을 갚을 것이라고 했듯이 회개의 삶은 우리의 죄로 인해 생긴 빚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삶인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를 마음대로 했을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 인간 만이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를 마음대로 하지 않았고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바로 원죄 없이 잉태되시고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님 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하와인 성모님을 통해서 당신께서 하신 약속을 이루십니다. 죄의 용서를 통한 구원의 약속을 성모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께 순종하시며 구원을 위한 도구가 되신 성모님께 우리도 언제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죄를 멀리하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용서를 청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은총을 전구해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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