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어쩌다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광야에 나온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물로 세례를 주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에게 증언 하라고 하신 것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별다른 목적 의식이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냥 어떻게 잘 살아서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물론 하늘 나라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세례를 통해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에는 우리가 잊고 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과 같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알려지시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바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그러한 희망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알려지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 있을까요? 세례자 요한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가도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것을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죄로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한 1서에서 분명하게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을 만나기를 희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우리의 삶 전체가 그 만남에 집중해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고 회개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지나가더라도 세례자 요한과 같이 알아보고 형제 자매들에게 저분이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세례자 요한과 같이 밖에 나가서 어디 강가에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며 예수님을 알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에게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주위의 형제 자매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께 열려 있는 삶을 살아간 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들 안에 계시기 때문에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곳은 우리가 매일 만나고 함께 활동하고 시간을 보내는 형제 자매들을 통해서 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들을 만나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잘 차려 입은 사람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만 계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들,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는 이들,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들, 스스로의 잘못으로 죄값을 치르고 있는 이들의 모습으로도 계십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진정으로 겸손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못난 모습을 하고 계시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이들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며 어디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침에 일어나 그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며 성령안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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