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인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그를 끌어내 돌로 쳐 죽입니다. 이 장면을 상상해보면 사람이 아니라 악마들이 달려드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용감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러한 상황에서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테파노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주님께 당신의 목숨을 바칩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성탄을 보내면서 예수님 성탄에 관련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많이 만났습니다. 성모님과 성 요셉,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세례자 요한 등 하느님의 뜻에 충실했던 이들입니다. 모두 나름 대로의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지만 성령께서 그들이 삶에 중심에서 그들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을 섬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하다는 말은 그 분이 삶의 모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박해할 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말을 해야 할 때 아버지의 영, 성령께서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견디어 내는 것은 망신창이가 되어 목숨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설사 겉 모습은 그렇다고 해도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한 것이지요. 세상에서 하느님을 모르는 어떤 사람 보다도 더 살아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례 때 그리고 견진 때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 성령의 힘에 의지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나의 욕심과 미움과 다른 많은 인간의 욕망들이 성령께서 계셔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스테파노에게 달려 들었던 사람들과 같이 우리에게 달려드는 악마들에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들 로부터 숨을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스테파노가 죽음을 당한 것과 같이 성령께서는 우리가 다치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그들을 막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치고 죽음의 문턱에 다 다르더라도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스테파노의 영혼의 눈은 하느님께 완전히 꽂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그를 흔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운 사람일수록 악의 힘은 더 크게 그 사람을 괴롭히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악마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악마가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싸움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도 악마는 포기하지 않고 달려 듭니다. 우리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유혹하다가 안되니까 다음 기회를 노린 것과 같이,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과 같이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우리도 성령이 충만한 삶, 하느님께서 내 모든 것이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영혼의 눈이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무리 달콤한 유혹이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성 스테파노와 같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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