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이들이라고 하십니다. 보통 사람들도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이들을 판단하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 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나 병자들,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 가요?
예수님께서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당신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 주변에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과 같이 말 뿐인 것입니다.
그러한 이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들 위에 서서 큰 자선을 베풀 듯이 이것저것 던져주고 채워 주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통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절대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성령과 일치를 이루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위에 멀리 계시면서 가까이 가면 같이 더러워질 까봐 이것저것 툭툭 던져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불가능 한 것이지요. 그래서 사회에서 높은 곳 만을 바라보며 낮아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말 뿐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눈에는 위선자일 뿐인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며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자신을 높이려고만 하고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에는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끌려 갈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자신을 낮추며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낮춤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에서 높아지는 것입니다.
사순 시기는 그 어느 전례 시기 때 보다도 더 우리에게 낮아지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수난을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주는 시기입니다. 그냥 무조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고자 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는 곳으로 낮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낮춤을 통해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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