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네베를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큰 도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걸어서 가로지르는데만 사흘이 걸린다고 하니, 까미노에서 하루 걷는 거리를 생각해 보면 70 - 80 km 가 되는 큰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 많은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모습, 자루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요나는 니네베로 가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도망가려다가 잡혀서 어쩔 수 없이 니네베로 왔고 니네베가 무너진다는 말만 했지 회개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그들이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니네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비록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만난 이들과 같이 마음이 굳어 있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당신은 요나와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신 데, 그 말씀에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죄를 지어도 뉘우칠 줄 알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악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죄를 짓고도 뉘우치지 않고 회개하라는 하느님의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는 다면 악하다 할 수 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악한 세대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악한 사회입니다. 그 어느때 보다도 회개 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고 모든 것이 자기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라는 것이 없다고 하는 사회인 것이지요. 죄가 없다면 당연히 회개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요나와 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일까요?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느님의 도구가 될 사람이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있고, 물론 완전하지 못한 교회 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 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들에게 무너진다, 멸망한다고 해도 믿지 않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 것이지요. 마음이 굳어 있는 이들로 채워져 있는 사회입니다.
나는 그러한 사람이 아닌지 분명히 성찰해야 합니다. 내가 성당을 다니고 미사를 다닌다고 해서 마음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그렇지만 마음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것 만을 바라보며 그것 만을 향해 굳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보다도 못한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회개하는 삶을 통해서 입니다. 마음에 재를 뒤집어 쓰고 주님 앞에서 뉘우치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 마음이 하느님의 은총을 향해 열려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시작한 사순 시기의 여정을 통해 더욱 우리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매일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성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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