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사순 시기가 아니라고 해도 어떤 이유에서 든 단식을 하게 되면 배고픔이 느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그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을 향한 마음이 커지게 됩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음식으로 배고픔을 해결하지만 단식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이루지 못하고 다시 원상 복귀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배고픔을 이겨낸 사람들은 단식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는 희망이 살아 있는 것이지요.
단식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 때문에 사순 시기의 중요한 행위 이고, 단순히 어떤 배고픔의 고통을 느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배고픔을 통해 하느님을 향한 우리 영적 배고픔이 눈을 뜨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육체적인 배고픔에만 머무른다면, 다이어트는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보면 사람들은 하느님을 향한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물론 배고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풍족한 사회안에서 배가 고플 틈이 없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금방 채울 수 있고, 아니면 고프지 않게 비어 있지 않도록 계속해서 채우는 것이지요. 이것은 음식에 대한 배고픔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도 그렇습니다. 인간 관계에서도 깊진 않지만 많은 관계를 만들어 놓고 항상 만나고 대화하고 누군가가 곁에 없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더 깊은 관계를 원하는 배고픔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려면 하느님을 향한 배고픔이 있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티비나 인터넷이나 책이나 운동 등 다른 많은 것으로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채우고 있기 때문에 침묵 중에 있을 수 있는 때가 없고, 배고픔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은 지금 단식하지 않는다고 하시는 이유는 당신께서 그들의 배고픔을 채워 주시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모두 어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 왔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식의 목적인 당신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들이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신랑을 빼앗길 날, 당신께서 더 이상 함께 하시지 않을 때, 당신을 향한 배고픔을 느낄 수 있도록 그들도 단식할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단식을 하거나 어떤 희생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 행위 들을 통해서 배고픔을 느낄 수 있을까요? 진정한 배고픔을 느낄 수 있기 위해서는 음식을 끊어야 합니다. 지금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들을 끊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완전한 끊임이 없이 줄을 계속 대고 있다면 배가 고파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고프지 않은 영혼은 하느님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절대 배고프지 않도록 하지 않으시는 것도 우리의 나약함을 잘 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배고프지 않도록 하신다면 그것에 적응이 되어서 당신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통해 단식을 하든, 단식한다는 것, 지금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는 것을 비워야 한다는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순 시기 만이 아니라 항상 필요한 것이지요. 물론 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세상의 것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 배고픔은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배고픔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도 계속되지만, 주님의 약속대로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갈 때, 다시 신랑과 함께 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배고픔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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