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선물을 건넬 때, 무엇이 여러분을 기쁘게 할까요? 상대방이 그 선물을 기쁘고 고맙게 받아줄 때 기쁨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선물을 보고도 시큰둥하거나 외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쁨을 주는 선물이 아니라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선물을 기쁘게 받을까요?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시큰둥하거나 외면하고 있을까요? 물론 우리가 외면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상처를 받지 않으시지만, 당신의 은총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그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러한 아픈 마음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으시는 것은 당신이 화가 나서 가 아닙니다. 거저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발로 차버리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이라는 것에 끌리기는 했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이벤트 였고, 삶의 모습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선물하셨지만 사람들은 그 은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응답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이사야서의 아하즈 임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와 백성들의 마음이 바람 앞의 나뭇잎처럼 흔들릴 때,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두려워하지 마라. 믿지 않으면 굳게 서지 못할 것이다"라고 위로의 선물을 건네십니다.
하지만 아하즈는 이 하느님의 약속을 거절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적군의 칼날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약속보다 더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하느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며 경건한 척 포장했지만, 속으로는 세속의 힘에 의존하려는 완고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위로 앞에서도 그는 신뢰와 믿음이라는 응답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십니다. 성사를 통해, 말씀을 통해, 때로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은총을 부어주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그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응답'이 있을 때 비로소 구원이 내 삶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렇다면 참된 응답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마태오 복음은 그것이 회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뜻과 어긋나 있던 내 생각과 습관의 방향을 과감히 돌려세우는 결단입니다. 이사야서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불안하고 두려워도, 흔들림 없이 하느님의 약속에 내 삶의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우리도 카파르나움 사람들처럼 주일마다 미사에 참례하고 말씀을 듣는 것에 익숙해져, 내 삶을 바꾸는 응답은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혹은 아하즈 임금처럼 현실의 걱정과 두려움에 짓눌려,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지 못한 채 세상의 방식만을 찾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은총의 선물을 내미시며 기다리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익숙함과 완고함을 벗어던지고 하느님을 향해 온전히 마음을 돌리는 참된 응답의 은총을 청합시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결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처럼, 하느님 안에서 굳게 서는 우리 신앙 여정이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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