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인 성 베네딕도 아빠스 기념일을 지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이 먼저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신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여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그 부르심 앞에서 주저합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는데', ‘내가 생각하는게 아닌데’ 하며 뒤로 물러서곤 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그리고 베네딕도 성인의 삶은 우리가 어떻게 그 주저함을 넘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지 그 길을 보여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성전에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현존을 체험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함 앞에 섰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자신의 나약함과 죄스러움이었습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나는 이제 망했구나.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이사야를 내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천사를 통해 제단의 숯불로 그의 입술에 대시며 죄를 없애 주십니다. 이 정화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이사야의 귀가 열립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라고 서슴지 않고 응답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고 말씀하십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듯, 제자인 우리도 세상 속에서 그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안의 세속적인 욕망과 이기심을 태워버리는 정화의 숯불이 필요합니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이 정화의 신비를 깊이 깨달은 분이었습니다. 성인은 젊은 시절 세속의 타락한 환경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수비아코의 동굴로 떠났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담기 위해 자신을 비워내는 희생을 통한 정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성인은 그 후 수도 규칙서를 통해 '기도와 노동'이라는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숯불이 꺼지지 않게 하며 우리의 삶이 정화되는 방법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우리가 이 부르심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 우리 입술과 마음에 묻은 세상의 때를 온전히 씻어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미사 중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성체 안의 예수님께 청합시다.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이기심과 두려움을 태워 주시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일상적인 기도와 충실한 하루하루의 노동이 우리를 맑게 닦아내는 제단의 숯불이 되기를 청합시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맡기며 정화될 때, 우리도 이사야 예언자처럼 기쁘고 담대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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