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통적으로 양궁에 강국입니다. 큰 대회와 올림픽에 나가면 우승하는 것은 거의 당연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메달을 따는 선수들은 활을 잡자 마자 대회에 나가서 쏘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이 본당에 오기 전에 여러 본당들이 함께 하는 아이들 여름 캠프를 제가 책임지고 있었을 때 여러 액티비티 중에 활을 쏘는 것도 있었습니다. 저도 쏴 봤는데, 운동 신경이 있으니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했지만, 과녁의 한 가운데 명중은 고사하고 과녁 자체를 맞히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승하는 선수들은 수 많은 시간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력을 가다듬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시간이 힘들어도 열심히 활을 쏘고 또 쏘기 때문에 대회에서 그들이 쏘는 화살이 명중하고 우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선택하신 사람의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칼과 화살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나가서 바로 휘두르시고 화살을 쏘아 대시나요? 아닙니다. 칼을 손 그늘에 숨겨 주시고, 화살을 어두운 통 속에 감추셨다고 합니다. 당신의 때를 기다리시는 것이지요.
오늘 탄생 대축일을 지내는 세례자 요한,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바로 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화살통 속에 숨겨 둔 이들이었습니다. 당신 그늘에 숨겨둔 칼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의 서른 해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이 굳세어졌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세상은 늘 "빨리 너를 증명해 봐!" 하고 등 떠밀지만, 요한은 하느님의 때가 올 때까지 어두운 화살통 같은 광야에 숨어 주님안에서 자신을 다듬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주님을 만나고 바로 뛰어나가지 않았습니다. 광야와 고향에 숨어 10년 넘게 기다렸습니다. 독실한 바리사이로서 분노로 휘두르던 칼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느님께 순종하는 칼이 될 때까지 기다린 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인내할 줄 아는 가요? 빨리 빨리 라는 세상에서 멈춰서서 침묵하며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가요? 하느님이 당기시기도 전에 나의 조급함으로 먼저 날아간 화살, 주님이 쥐시기도 전에 내가 나서서 먼저 휘두른 칼은 이웃에게 상처만 남깁니다. 아무리 내 뜻이 옳아도, 기다리지 못해 홧김에 내뱉은 말과 행동은 과녁을 벗어난 '유탄'이 되어 엄한 사람을 피 흘리게 합니다. 진정한 신앙의 깊이는 내 말솜씨가 아니라, 하느님의 손안에 잠자코 머무는 인내입니다.
그렇다면 기나긴 연마 끝에 날아간 요한이라는 화살은 어디에 꽂혔습니까? 정확히 예수님을 향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화살은 과녁에 꽂히는 순간, 쏜 사람인 하느님과 맞은 과녁인 예수님만 남기고 시선에서 사라집니다. 화살이 대단하다고 화살에게 금메달을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게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며 조용히 뒤로 물러났습니다. 하느님 도구의 가장 영광스러운 완성은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세례자 요한은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혹시 지금 어두운 화살통 속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고 주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까? 잊혀진 게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끝을 가장 뾰족하게 다듬고 계신 중입니다. 칼날을 날카롭게 갈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미사 중에 우리 안의 조급함을 제단에 내려놓고, 주님 앞에 조용히 머무를 수 있도록 합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마음이 인내하고 기다리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 세상을 바꾸는 사랑의 화살과 칼이 될 수 있도록, 세례자 요한께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마음을 다해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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