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가 지켜보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종종 행동을 다르게 하곤 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평소와 다르게 꾸미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느슨해지기도 하죠.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누가 보든 말든, 혼자 있든 여럿이 있든 일관성 있게 행동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한결같은 뒷모습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고 좋은 모범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아흔 살의 율법 학자 엘아자르가 바로 그렇게 한결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억지로 돼지고기를 먹이려 한 것이 아니라, 험한 일을 당할 수 있는 사람이 들었을 때 쉽게 넘어 갈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네가 평소 먹던 고기를 가져와서, 이교 제물인 '척'만 해라." 당시 박해자들조차 엘아자르를 배려해 주려 했기 때문에, 적당히 남들의 눈만 속이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왠만한 사람은 넘어가기 좋은 제안인 것이지요.
하지만 엘아자르는 그들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신앙을 가장된 행동으로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든 보지 않든, 심지어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시는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의 일관성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 초인적인 일관된 선택은, 길을 잃을 뻔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유혹에 넘어갔더라면 아마 많은 이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그들도 흔들렸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삶도 분명히 엘아자르가 보여준 모습과 같았습니다. 윤지충 바오로는 유교적 질서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대에, 겉으로는 세상의 법을 따르는 척하며 속으로만 신앙을 간직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가 보든 말든 하느님 앞에서의 진실함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형장으로 걸어갔습니다.
이들의 일관된 죽음은 결코 헛된 끝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이 된 것이지요. 그들이 타협 없이 스스로 썩어 없어지는 밀알이 되었기에, 그 모범이 뒷세대에게 전해져 오늘날 한국 교회와 우리라는 수많은 열매로 맺히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목에 칼이 들어오는 박해는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일관성을 지켜야 하는 일상의 유혹은 매일 이어집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순간, 나만의 이익을 위해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마다 엘아자르와 순교자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오늘 복음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밀알은 땅속에서 완전히 자신을 쪼갤 때 비로소 싹을 틔웁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하느님 앞에서 나의 이기심을 꺾고 낮아지는 진실된 일상 속 작은 죽음 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떨어뜨려야 할 밀알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의 그 한결같은 뒷모습은 우리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가장 훌륭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는 하느님 앞에서 엘아자르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과 같은 선택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나의 선택은 나 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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