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어떤 장애물을 만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장애물을 치우고 가던 길을 계속 갈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와서 치워 주기를 바라며 멈춰서 있을까요? 물론 어떤 장애물인가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던 길을 어떻게 해서라도 계속 가려는 사람과, 가지 않고 멈추는 사람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에 두려움이란 그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어떤 이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꼼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성상을 보면 칼과 책을 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내 놓기까지 충실하게 싸웠던 용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전교 여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큰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산이나 바다나 다른 어떤 장애물도 막아서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오로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마주하며 전혀 두려움이나 어떠한 근심도 없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도 기계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아무런 감정이 없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을 보면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사도 바오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두려움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주님께서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두려움을 이겨내는 길은 먼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확고 하다면 두려움이라는 장애물, 두려움을 만드는 장애물 앞에 멈춰서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장애물을 없애 주시겠지.’ 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주시는 용기를 안고, 그 장애물을 마주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앞의 장애물을 마술처럼 치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그 장애물을 기꺼이 넘어설 수 있도록 끝까지 우리 곁에 머물며 힘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져서 선교의 길을 계속 간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여전히 두려움과 근심이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큰 하느님의 약속, 곧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말씀을 굳게 붙잡았기에 멈추지 않고 코린토에 남아 계속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도 늘 크고 작은 두려움이라는 장애물들이 찾아옵니다. 때로는 그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거나 누군가 대신 치워주기만을 바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가 내 곁에 계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겪는 지금의 근심과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치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처럼 더 굳건한 믿음과 영원한 기쁨을 낳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려움 앞에서 멈춰 서기를 거부합시다. 우리와 늘 함께하시며 지켜주시겠다는 하느님의 든든한 약속을 믿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 그 신앙과 사랑의 발걸음을 용기 있게 이어 나가는 은총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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