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정치인들을 보고 권력을 잡으면 결국에는 다 똑같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처음에는 다 대의를 말하고 국민들을 위한다고 떠벌리고 다니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나 어려운 위기가 닥치면 결국 자신의 이익과 자리를 지키는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생각에는 손해보지 않고 내 것을 쥐고 있는 것이 지혜로운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러한 세상의 논리를 완전하게 반박합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물론 누구나 맞는 말이 라고 하겠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늘 사도행전에서 이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낸 사람들을 만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안티오키아로 보내며, 그들을 가리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 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목숨을 내놓은 사람과, 어떻게든 희생하지 않고 자기 것을 지키려는 사람 중에 과연 누구의 말을 믿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듣기 좋은 언변이나 칼과 같이 날카로운 논리에 고개를 끄떡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말에는 삶을 기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그리고 우리 공동체 안에서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피를 흘리는 순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들을 이끌어 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분들의 삶을 보면 ‘목숨을 내놓는다’ 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있습니다.
행사를 하나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챙기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것, 사람들 사이의 엇갈리는 의견과 갈등 속에서 내 자존심을 꺾고 먼저 다가가는 것, 남들은 푹 쉬고 싶어 하는 주말에 기꺼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붓는 것. 이 모든 것이 사실상 나의 '이익'을 포기하고 매일매일 나의 '목숨'을 내어놓는 행위입니다. 내 이익과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린다면, 봉사자의 자리는 단 하루도 버텨낼 수 없는 무거운 십자가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힘들다는 말부터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내가 전하는 복음과 사랑의 가치가, 내 개인의 시간이나 이익보다 못하다고 행동한다면 과연 누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우리가 기꺼이 내 것을 내어놓고 희생의 멍에를 짊어질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 헌신의 뒷모습을 통해 참된 복음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모님의 삶을 보면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모님을 사랑하게 되면 분명히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당신을 위해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위해 주님의 뜻에 순종하셨고, 아드님의 십자가 죽음에까지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성모님께서 당신의 안위만 먼저 챙겼다면 우리는 그분의 삶을 통해 절대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참으로 힘들고 수고롭지만, 예수님께서 친히 걸어가신 가장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나의 이익을 내려놓고 형제들을 위해 '작은 목숨'을 내어줄 수 있을지 깊이 묵상해 봅시다. 그리고 특히 성모성월을 맞아 어머니께 우리도 당신과 같은 희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청합시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내어준 그 빈자리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화가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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