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조종하려면 조종사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한번 따면 끝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건강검진, 정신과 검진, 등등 여러가지 테스트와 훈련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 자격이 충분한지를 따집니다. 그 밖에도 사회에 많은 일들은 자격을 요구합니다. 이는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고 서로를 신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잣대를 우리는 하느님과 관계에도 적용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매일 묵주기롤 20단을 해야; 아침 저녁으로 빠지지 않고 기도해야’, ‘이정도의 봉사를 하고 윤리적 기준에 맞춰야’ 하느님께 사랑받을 자격이 생긴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저렇게 사는 사람이 무슨 신앙이 있다고 하는가’, ‘저런 사람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겠는가’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자신이 판단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형제 자매들에게 불필요하고 감당하기 힘든 멍에를 씌우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 초대 교회 예루살렘 회의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이 내려집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영향이 있는 결정입니다. 유다인 신자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신자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려는 것입니까?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세상은 자격이 있는 사람을 자리로 부르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부르신 사람에게 당신의 아들 딸이 되는 자격을 주시는 분입니다. 부르시기 전에 자격을 따지는 분이 아니신 것이지요. 어떤 이득이나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내 사랑안에 머물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것도 증명해야 할 것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시고 품어주시는 은총의 빛 아래 기쁘게 머물라는 초대입니다.
그렇다면, 이 조건 없는 사랑을 체험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사도행전에서 야고보와 이방인 신자들은 평화로운 공존과 유다인 형제들을 존중하여, 기꺼이 자신들의 자유를 절제하고 몇 가지 금기 사항을 지키기로 양보합니다. 이것은 구원을 얻어내기 위한 억지 조건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내어준 사목적 배려 였습니다.
은총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사람은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끌려가는 무거운 율법의 멍에는 십자가 앞에 벗어던지지만, 형제를 존중하고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스스로 사랑의 멍에를 기꺼이 짊어집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의 일에서는 지혜롭게 자격과 능력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영혼을 대하고 서로를 받아들일 때 만큼은 하느님의 시선을 닮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 스스로에게 씌웠던 완벽함의 멍에, 그리고 타인을 향해 남몰래 들이대던 판단의 잣대를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우리 모두가 자격을 따지지 않으시는 주님의 넓은 품 안에서, 서로를 조건 없이 받아들이며 참된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은총 구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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