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주임 신부님 강론

제목사순 제 5주간 금요일2026-03-27 08:24
작성자 Level 2

오늘 예레미야서 말씀에는 복수라는 말이 나옵니다 번은 예레미야를 없애려고 하는 이들이 말하는 복수가 있고, 다른 번은 예레미야가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 에게 하느님께서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게 배신자였습니다다들 이집트나 다른 나라들의 힘을 빌려서 바빌론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정작 하느님을 믿지 않고 우상 숭배에 빠져 있으면서도 예루살렘과 성전이 있으니 하느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를 말하고 그들이 있는 길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시는 바빌론에게 항복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그러한 예레미야가 악인이었고, 당연히 그의 죽음은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그러한 이들에 대해서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털어 놓으며 복수를 보게 해달라고 합니다그러나 여기서 예레미야는 저들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수를 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럴 때가 있습니다누가 나에게 잘못을 했거나, 계속해서 나의 삶을 너무나도 힘들게 만들 미움이 극에 달하면서 그들도 같은 일을 당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일을 당했으면 좋겠다고 빌기도 합니다하느님께서 고통을 보시고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에게 개인적인 복수를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지요하느님이 무슨 청부업자도 아닌데 말입니다인간의 마음은 아마 그렇게 먼저 미움과 복수를 떠올리지, 용서를 떠올리지 않을 것입니다그래서 영화들을 보면 악인들에게 철저하게 복수하는 영화가 인기가 많지, 미워도 참고 당하기만 하며 용서하는 내용은 그다지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우리 삶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영화에서라도 악인이 복수를 당하는 것을 보면 통쾌한 느낌과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겠지요

오늘 요한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 역시 이러한 스스로 정당하다고 믿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이라 단정 짓고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분을 처단하겠다며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예레미야를 핍박하던 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분노와 폭력이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돌을 들고 몰려드는 그들을 향해 똑같이 분노하시거나 기적의 힘으로 사적인 앙갚음을 하지 않으십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으시고, 아버지가 맡기신 선한 일들을 차분히 밝히신 조용히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십니다. 자신을 해치려는 이들에 대한 심판을 오직 하느님 아버지께 맡겨드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억울함에 사무쳐 손으로 직접 돌을 던지고 싶을 , 혹은 하느님께서 대신 저들을 철저히 응징해 주시기를 바랄 , 예레미야 예언자와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를 다른 길로 초대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느님께 청한 복수는 개인적인 앙갚음이 아니었습니다.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속과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라는 고백처럼, 모든 것을 아시는 참된 재판관께 자신의 억울함을 온전히 맡겨드리는 겸손과 의탁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미움이 솟구치고 손으로 돌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 마음을 억지로 숨기려 하기보다는 예레미야처럼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털어놓읍시다. 그리고 먼저 손에 단단히 미움의 돌을 내려놓고, 가장 공정하고 의로우신 하느님께 나의 모든 억울한 '송사' 맡겨드리는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참된 평화는 통쾌한 복수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공정하심에 나의 삶을 온전히 내어 맡길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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