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시간이 잘 갑니다. 재의 수요일이 어제 같은데 어느덧 사순 시기도 중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모두 은혜로운 사순 시기를 보내고 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돈, 인맥, 혹은 내 자신의 능력을 더 믿고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느님보다 강대국의 힘과 군사력을 더 믿었습니다. 하느님 위에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우리에게 우상입니다.
하지만 호세아 예언자는 그런 '헛된 우상'들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수많은 제물이나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뉘우치는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 하나뿐 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 학자 역시 다른 이들과 달리 무엇이 중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전에서 바치는 그 어떤 희생 제물보다 훨씬 낫다 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지혜로운 대답을 들으시고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가끔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내가 무언가 대단한 희생을 치르거나 어떤 큰 변화가 있어야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겠지 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가 변화나 어떤 일에 대한 응답이 아닙니다.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겠다."
이슬이 맺힐 때 소리가 나던가요? 천둥 번개처럼 요란하지 않습니다. 이슬은 밤사이 아무도 모르게, 아주 조용히 맺히며 메마른 땅을 흠뻑 적시고 마침내 꽃을 피워냅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걱정거리로 아등바등 살아갈 때도, 하느님은 이미 조용한 이슬처럼 우리 영혼의 곁에 다가와 계십니다. 세상 안에서 매말라가는 우리의 영혼에 당신의 은총으로 생기를 주시는 것이지요. 그 은총이 우리를 변화 시키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응답,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남은 사순 시기, 우리의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 빼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꽉 쥐고 있던 세상의 욕심들을 조용히 내려놓고, 소리 없이 다가와 나를 살리시는 그 이슬 같은 하느님의 사랑에 나를 온전히 맡겨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내가 생각이나 어떤 변화를 그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모습 그대로,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도 조용히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참된 사랑과 뉘우침을 안에 살아갈 때, 하느님의 나라는 저 먼 곳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