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봅니다. 사울 왕은 나가서 싸우겠다는 다윗에게 자신의 투구와 갑옷을 입히지만, 한번도 입어본 일이 없는 다윗에게는 그 모든 것이 맞지 않아 걷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다윗은 세상이 제공하는 안전장치를 벗어 던지고, 평소 자신이 쓰던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 다섯 개, 그리고 무릿매만을 들고 나갑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진짜 무기는 돌멩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비아냥 거리는 골리앗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어리게만 보였던 다윗은 그 누구보다도 강한 믿음으로 오직 주님만이 자신의 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에서 골리앗을 두려워하며 지켜만 보고 있던 사울과 이스라엘이 잊고 있었던 사실이지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녀 아녜스 역시 다윗과 같습니다. 그녀에게 골리앗은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권력과 그녀의 정결을 위협하는 이들의 탐욕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어린 소녀 아녜스는 한없이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아녜스 성녀는 다윗처럼 세상의 투구와 갑옷, 즉 타협, 배교, 안락한 삶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그녀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돌멩이 하나를 가슴에 품고, 죽음이라는 골리앗 앞에 당당히 섰습니다. 그녀의 육체는 죽임을 당했으나, 그녀의 영혼과 믿음은 로마 제국을 이겼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만나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이라는 갑옷 속에 숨어, 생명을 살리는 사랑을 외면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슬퍼하시면서도, 주변의 시선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오그라든 손을 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루 미뤘다가 하시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고통을 받거나 기다리지 못할 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처럼, 그리고 훗날의 아녜스처럼, 세상의 생각이나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사이들의 위협보다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 앞에도 수많은 '골리앗'이 서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감당하기 힘든 질병일 수도, 경제적인 고통일 수도, 혹은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나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이고, 세상의 투구와 갑옷, 즉 돈, 권력, 인맥 같은 것들이 없이는, 즉 세상의 눈에 들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듭니다. 하지만 오늘 다윗과 성녀 아녜스와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갑옷을 벗어야 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입어야 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끼워 넣어도 맞지 않습니다. 또한 적대적인 세상을 상대하기 위해서 폭력이 아니라 믿음의 돌을 쥐고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이 쥐고 있던 매끄러운 돌이 오랜 시간동안 흐르는 냇물에 의해 깎였듯이, 우리의 마음도 교회안에 성사를 통해 흐르는 주님의 은총의 냇물에 의해 깎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 필요한 모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바로 우리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녀 아녜스의 축일을 맞아, 우리 손이 세상의 걱정으로 오그라들어 있다면 주님 앞에 활짝 펴야합니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만군의 주님의 이름' 으로 나아가 우리들의 골리앗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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