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몹시 고팠던 제자들에게 눈앞에 펼쳐진 밀밭은 참으로 반가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이 어떤 일에 너무 몰입하거나 감정에 휩싸이면, 평소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도 잠시 잊어버리곤 합니다. 제자들도 안식일 규정을 분명 알고 있었겠지만, 배고픔이라는 인간적인 사정 앞에서 그 규정보다 당장 눈앞의 밀 이삭에 손이 갔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바리사이들의 시선 또한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비’라는 하느님의 눈이 아니라, 단죄하고 판단하는 ‘세상의 눈’으로만 제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라는 예수님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사무엘 예언자도 비슷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울을 대신할 새로운 왕을 찾으라 하시며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십니다. 하지만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사무엘의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사울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 인간적인 연민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온전히 하느님 안에 머물지 못했기에, 사무엘조차도 하느님의 시선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이사이의 아들들을 판단하려 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아,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가 저기 있구나.” 하고 섣불리 넘겨 짚은 것이지요. 위대한 예언자조차 감정에 치우치니 하느님의 뜻을 바로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감정이라는 파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기쁨과 슬픔, 분노와 섭섭함이 우리 마음을 차지합니다.
우리 마음을 한번 ‘나침반’에 비유해 생각해 봅시다.
나침반의 바늘은 정확히 북쪽을 가리키기 전까지, 쉴 새 없이 흔들립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픈 일이 있으면 평화를 잃고 흔들리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미움으로 요동칩니다. 제자들이 배고픔에 흔들렸고, 사무엘이 슬픔에 흔들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고장 나지 않은 나침반은 흔들림 끝에 결국 ‘북쪽(N)’을 찾아 가리킵니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파도 치는 세상 속에서 감정에 흔들리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흔들림 끝에 다시 하느님을 향해 마음의 바늘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문제는 흔들린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고정되어 다시 하느님께로 시선을 돌리지 않은 데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나침반은 고장 난 채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던 셈입니다.
반면 사무엘은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인간적인 시선을 거두어 다시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흔들리던 마음을다시 하느님께 방향을 맞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나약한 우리가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하느님보다 내 기분이 먼저고, 화가 나면 용서보다 미움이 먼저 앞서는 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흔들리는 나침반 바늘이 자리를 잡듯 다시 주님께 눈길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감정에 휘둘리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무엘처럼 다시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지금 마음이 슬픔으로, 혹은 분노로 흔들리고 있다면. 우리의 시선이 다시 주님을 향하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렇게 어떤 순간에도 마음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다시 맞추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