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죽음이라는 초래 할 수 있는 경우나 자리를 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공포 영화를 보면 말이 안 되는 장면들이 종종 나오지요. 무서우면 빨리 도망가면 되는데, 어디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소리가 나는 곳에서 멀어져야 하는데 무슨 소린지 알아보려고 하다고 죽곤 합니다.
그런 말이 안 되는 장면은 공포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그의 죽음은 세례자 요한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찾아 갔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요. 헤로데가 어떻게 살던 그냥 뒀어도 됬을 텐데 그의 영혼을 위해서 그의 옳지 않은 삶에 대해 바른 말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고 결국은 그를 미워한 헤로디아의 손에 죽게 된 것입니다. 아마 죽음을 두려워 했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국의 순교자들도 죽음을 두려워 했다면 복음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전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신자들 중에 두려움 때문에 배교를 한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두려움 없이 목숨을 내 놓았고, 그 영광을 지금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삶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하려고 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 복음 12장에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말씀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백성들과 임금들과 대신과 사제들에게 맞서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며 당신께서 그의 힘이 되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불사신이 되어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는 유다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죽음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셨고, 세례자 요한에게도 마찬가지로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힘이 되신 것과 같이, 당신께서는 우리의 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인간의 본능을 넘어서려는 마음과 노력이 있어야 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삶 앞에 내 세워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 다는 것을 잊지 않고 믿음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하느님 안에서 잠시 지나가는 과정이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우리 영혼에 아무런 해도 입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며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 놓으신 성 요한 세례자에게 우리도 당신과 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용기의 은총을 전구해 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두려운 순간에도 우리는 죽음으로서 생명을 얻는다는 주님의 말씀을 꼭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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