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잃은 것도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인데, 거기에다 시신까지 없어졌고 찾을 길이 막막하니 정말 큰 고통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했던 것이지요.
그러한 큰 슬픔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큰 기쁨으로 바뀝니다.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이해하고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보고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이 기쁨이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러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붙들고 있는 슬픔을 놔야 하는 것이지요. 만일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도 분명히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 죽음과 슬픔에 매여서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다면 그녀의 슬픔은 절대 기쁨으로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큰 슬픔이 있고, 다른 세상의 일들을 통해서 큰 슬픔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슬픔을 느끼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나,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슬픔안에만 머물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가지고 당신께 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름을 부르셨듯이 사랑이 가득한 목소리로 고통속에 있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 실 때 그 슬픔은 당신 안에서 기쁨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이나, 다른 어떤 큰 고통이 힘들게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세상에서 고통이나 힘든 일에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되는 것이지요.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 후에 부활이 있듯이, 믿는 이들에게는 슬픔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에 따르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이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랑이 우리의 마음의 귀를 열어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의해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그분의 목소리나 가르침을 그냥 흘려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마귀들의 손에서 구해주신 분의 말씀을 언제나 귀 기울이며 들었고 예수님의 십자가길에 끝까지 같이 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을 만큼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부활을 제일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드러내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매일의 삶에서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떠한 길에서도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면, 그러한 사랑이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크신 사랑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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