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때 혼자 방에서 자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두려워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두려움이 무서운 꿈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깨어나서 울며 방에 괴물이 있다고 하며 가서 자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괴물 같은 것은 없다고 하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가서 자라고 혼을 내면 아이가 가서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잘 수 있을까요? 아마 지혜로운 부모는 아이와 함께 방으로 가서 불을 켜고 옷장도 열어 보여주고, 침대 밑을 전등으로 비춰서 괴물은 없고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함께 있어 줄 것입니다. 아이가 바보 같고 어리석다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두려움을 먼저 헤아려주는 사랑인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돌아온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평화를 빌며 나타나십니다. 하지만 너무나 놀란 나머지 유령으로 알고 두려워한 것이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아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부활 한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왜 이렇게 믿음이 없냐’ 고 하시며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대신 부모가 아이와 함께 방에 가서 확인시켜주는 것과 같이 제자들의 눈높이로 내려오셔서 당신의 손과 발을 만져 보게 하시고, 그들 앞에서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절대 믿음을 강요하거나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지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베드로는,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자신이 만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똑 같은 사랑을 베풉니다. 성전 곁에 모인 이스라엘인들은 과거에 생명의 주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던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의 죄를 지적하지만, 결코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세우지 않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베드로는 그들의 믿음 없음을 심판하는 대신, 그 밑바탕에 있던 영적인 무지함을 이해해 줍니다. 두려움에 빠진 아이를 깨워주듯,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죄가 지워지고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라고' 하며 새로운 생명과 위로의 자리로 그들을 다정하게 이끌어 줍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제자들처럼 기적 앞에서도 의심하고, 때로는 사도행전의 백성들처럼 무지함 탓에 주님의 뜻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믿음 없음을 단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운 물고기를 드시며 안심시켜 주셨던 예수님처럼 우리 삶의 자리에 내려와 함께 해 주시고, 베드로 사도를 통해 위로의 때를 약속하신 분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나의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끝까지 기다려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깊은 위로와 참된 평화를 누리는 은총을 구하며 미사를 함께 봉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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