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의 수호자이시며 캐나다 교회의 주보 성인이고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 성인의 말씀은 단 한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침묵과 행동은 구원 역사의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독서와 복음 말씀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요셉이라는 한 평범하고 의로운 사람을 통해 완성되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 임금은 하느님을 위해 향백나무로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지어드리려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해 그것은 당신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지어주는 건물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어 주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지어주시겠다는 집은 건물이 아니라, 영원히 이어질 다윗의 왕조, 즉 그의 가문을 의미합니다. 구원 사업은 우리가 이루어 내는 어떤 대단한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초대하시는 하느님께 있음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이 영원한 집은 어떻게 지어질 수 있었을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믿었다"고 말합니다. 도저히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죽은 것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한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 흔들림 없는 신뢰를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집은 인간의 율법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 다윗의 가문과 아브라함의 믿음이 요셉이라는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 보게 됩니다.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요셉이 느꼈을 인간적인 절망과 혼란은 아브라함이 마주했던 것 못지않은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의 엄격한 율법대로라면 마리아를 세상에 드러내어 돌로 치는 형벌을 받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요셉의 의로움은 율법을 기계적으로 집행하는 의로움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생각하는 의로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죄가 아닌 자비와 온유함을 선택하여 남모르게 파혼하려 했고, 천사의 부르심 앞에서는 자신의 모든 계획을 접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런 요셉 성인을 가리켜 '수용하는 아버지'이자 '그림자 속에 있는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마주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분노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하느님의 신비를 굳센 믿음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또한, 다윗처럼 웅장한 성전을 짓고자 애쓰는 대신, 성가정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어 든든하고 따뜻한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상의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깊이 체험하실 수 있었던 것은, 지상의 아버지인 요셉이 보여준 조건 없는 희생과 온유한 사랑이 늘 곁에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면서 다윗처럼 하느님을 위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거나, 뜻하지 않은 고난 앞에서 좌절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세상에서 드러나는 어떤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아브라함의 믿음, 율법의 잣대보다 이웃을 살리는 자비를 택하는 요셉의 참된 의로움, 그리고 내가 주인공이 되기보다 가정을 위해, 이웃을 위해 묵묵히 따뜻한 그림자가 되어주는 헌신입니다.
오늘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내 고집과 계획을 조금씩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조용한 그림자'가 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겸손과 침묵을 통해, 당신이 거처하실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집을 우리 가정과 공동체 안에 지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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