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주임 신부님 강론

제목연중 제 2주간 금요일2026-01-23 08:32
작성자 Level 2

1981 5 13,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광장에서 알리 아흐자라는 청년이 총탄에 요한 바오로 2 교황님이 쓰러지신 사건입니다. 다행히 교황님은 수술 끝에 목숨을 건지셨습니다.

그리고 2 뒤인 1983 성탄 무렵, 교황님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청년을 만나기 위해 로마의 레비비아 교도소를 방문합니다주변의 많은 이들이"굳이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그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라고 하며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교황님은 감방 안으로 들어가 20 동안 그와 둘만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가 끝난 ,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교황님은 나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를 용서했고, 이제 우리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암살자 아흐자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분이 나를 찾아와 손을 잡았을 ,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습니다. 총으로는 사람을 죽일 있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사랑뿐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그러한 '용서의 순간' 봅니다.

쫓기는 신세였던 다윗은 동굴 깊은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 왕이 뒤를 보러 동굴로 홀로 들어옵니다. 밖에는 3 명의 군사가 있었지만, 동굴 안에서는 그는 혼자였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이것은 하느님이 주신 기회이고, 그를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을 마주합니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의 약점을 내가 쥐게 되었을 , 혹은 사람이 실수를 해서 내가 그를 비난할 완벽한 '명분' 생겼을 때입니다. 세상의 논리대로라면 그때가 바로 '복수의 기회'이고 '승리의 타이밍'입니다. 칼을 마구 휘둘러야 한다고 우리의 마음과 세상은 말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칼을 거둡니다. 사울의 대신, 그의 겉옷 자락만 살짝 베어냅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울을 죽이면, 그는 사울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악순환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복수 보다 용서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은 사실을 알게 되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결국 다윗은 칼을 쓰지 않고도 사울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하느님의 뜻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하게 알고 받아들이게 것이지요요한 바오로 2 교황님이 총을 암살자를 '형제'라고 부르며 찾아갔을 진정한 승리를 거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할 제자를 부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이유는,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는 , 이에는 " 맞서 싸우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는 방식,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어려운 길을 걸으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겉옷 자락' 이상을 자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말로 상처 주고,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싶은 유혹이 듭니다. 사실도 알지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만 듣고 다른 사람을 무조건 미워합니다누굴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분심이 든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과연 사람 때문일까요용서할 모르는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겉으로는 정의로운 척하면서 손에 미움의 칼을 계속 들고 있는데 마음이 평화로울 없지요

오늘 다윗이 행동을 기억합시다.

손에 칼을 내려놓을 , 비로소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안에 움직이기 시작하십니다. 내가 상대를 심판하지 않고 하느님께 맡겨드릴 ,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고 평화가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마음속의 미움이라는 칼을 조용히 칼집에 꽂아 넣는 다윗이 되어 봅시다. 너그러움이 바로 우리를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만들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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