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질투는 다윗의 승리를 하느님의 승리가 아닌, 인간 다윗의 승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힘이 하느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면서도 하느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사울에 눈에는 하느님의 힘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 반면 그의 아들 요나탄은 절대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누가 다윗의 힘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향해 몰려든 많은 사람들은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왔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당신을 알아보는 더러운 영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병이 고쳐지는 것, 그분이 자신을 위해 하시는 일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더 이상 그분이 자신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주실 수 가 없게 되자 대부분 예수님으로부터 돌아선 것이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관계를 맺으시는 분입니다. 아이들이 때로는 부모님을 무엇을 해주는 사람으로만 생각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물질 적인 것 만을 쫓는 부모의 잘못된 삶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자녀들의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부모와 자녀 사이에 관계가 좋을 수 없지요. 부모는 부모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고 관계해야 하는 것이지 어떤 세상의 물질 적인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도 아니고 내 병을 고쳐 줘서도 아니며,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이웃에게 핍박 받거나, 노숙자들과 같이 먹을 것이 없고 잘 곳이 없거나, 순교자들처럼 당장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하느님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통해 큰 일을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해도 하느님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위해 하느님을 떠난 사울과는 다른 왕이었던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항상 머무시는 것은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엇을 잘 해서가 아니라 사랑스러워서도 아닙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느님을 우리가 삶의 구석 구석에서 만날 때, 우리 또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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