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제자들에게 그러한 힘과 권한을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스승이 잘 키워낸 제자들을 사회로 내보내며 가르칠 것을 다 가르친 것과 같이 뿌듯한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이들이 당신께서 맡기시는 일을 잘 해 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이었을까요? 힘과 권한을 자신들의 것으로 착각하다가 일을 망치게 될 까봐 불안 하셨을까요?
온전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마 많이 불안하지 않을까요? 회사의 미래가 달린 가장 중요한 일을 회사 생활 초년생 들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그런 결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해도 불안한 마음이 크겠지요. 분명히 제자들은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들도 아니었고, 사회에서 지위가 높거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집안에 중요한 일을 어린 아이에게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셨고, 당신의 권한과 힘을 주시며 그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들이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길을 가는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다니는 것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할 때 그들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이 더 크게 들어 나도록 하는 것이고, 그들이 의지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내진 이들이 가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디서 어떻게 먹고 잤는지 등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복음이 말하는 것은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충실하게 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믿고 보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을 망칠까봐 불안해 하지도 않으시고, 힘에 취해 자신을 들어 높일까봐 걱정하지도 않으시고, 믿고 보내셨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그런 가능성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그들을 믿고 보내셨습니다.
믿지 않으셨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나 다른 이유들로 아마 아무것도 맡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어떻게 나약한 인간에게 맡길 수 있을까요? 죄의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가 잘못했다고 하며 용서를 청해도 그 사람이 분명히 다시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용서가 될까요? 아마 힘들 것입니다. 하느님께도 우리가 가서 용서를 청해도 아마 우리가 다시 죄를 짓는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혼자 상상을 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시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아시지만, 용서를 청하는 우리를 보시고 사랑으로 용서하십니다.
몇일 째 듣고 있는 에즈라기의 말씀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왕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유배 왔던 백성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절대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며 그러셨을까요?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뉘우치는 사람, 당신께서 보내시는 사람을 믿으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해도 다시 또 용서하시고, 또 보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은 완전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완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실수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신앙의 삶을 외 줄 걷듯이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느님께 의지하고 주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믿고 보내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완전함이 아니라 나약함을 통해서 당신의 힘과 권한이 더 크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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