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보내신 일흔두 명의 제자들은 정말 신이 나서 돌아왔습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처음에는 의아했겠지만, 마귀들까지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기쁘고 신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제자들이 경험했던 것을 경험한다면 아마 마찬가지로 기쁘고 신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나서 마귀가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그들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과연 무슨 뜻일까요? 사실 마귀가 사람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해 낼 수 있고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힘에 기뻐하지 말라고 하시며 하느님과 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서 기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그 제자들의 힘, 즉 사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그 힘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당신께 의지하며 함께 머무는 이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 아니라, 그 힘의 원천이신 하느님과 관계인 것이지요.
그런 하느님과 관계가 없었다면,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내셨을 때 제자들은 걱정부터 했을 것입니다.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이 여정을 가야 하는가, 어떻게 우리가 가서 병자들을 고쳐 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하나, 등등 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그렇듯이 많은 걱정들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그 관계의 중요성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여정에 필요한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 관계에 있는 서로 의지하는 모습은 보통 모든 것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이나 내가 할 수 없는 것 만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은 아주 어린아이이거나 병이나 다른 이유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서 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어머니와 그 품안에서 젖을 먹는 아기의 모습에 비유하십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아기에게 어머니 품만큼 평화롭고 편한 곳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울기만 하다 가도 엄마 품에서 젖을 먹을 때는 조용하고 편안한 모습인 것이지요. 그리고 모든 것을 의지하기 때문에 다른 걱정을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세상걱정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커가면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고 그러면서 부모나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는 것이 점점 적어지지만 그만큼 걱정거리도 많아지는 것이지요.
우리의 영적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며 그 품에 안겨 있는 아이와 같이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하는 삶, 그 품에 안겨 있는 삶을 살아갈 때 세상의 고통과 어려움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하느님께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갈라티아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이 창조 되었기 때문이지요. 새로운 창조는 십자가의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말합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관계인 것이지요.
사실 사도 바오로는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 어떤 것도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냈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코린토 1서의 15장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오로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아마 벌써 그만두고 사라졌을 것이며 아무도 그에 대해서 알지 못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누구보다도 더 열렬하게 복음을 전하신 분이고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정말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온갖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세상에 맞섰지만 하느님과 관계에서는 엄마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와 같았던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홀로서기를 하며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다는 교만에 빠져 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이웃을 존중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많은 악행들도 있지만 보이지 않게 행해지는 악행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한 세상이 예수님께는 없어져야 할 악인들이 아니라 일꾼들을 보내 수확해야 하는 밭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살리시기 위해서 믿는 이들을 보내십니다. 여러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오직 당신을 믿고 의지하며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 많을수록 더 겸손해져야 하고 더 의지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겸손은 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만 하는 모습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형제 자매들과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감사하며 헛되지 않도록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아무리 큰 잘못을 했다고 해도 형제 자매들을 용서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이웃에게 베풀 줄 압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것과 같이 큰 일을 해 내도 자랑하지 않고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과연 마귀가 제자들에게와 같이 나에게 복종할 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 보다 먼저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삶, 어린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모습과 같이 의지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그보다도 더 큰일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서슴지 않고 갈 수 있는 믿음을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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