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통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한다면 맞서서 싸우게 됩니다. 누가 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고 다닌다면 똑같이 하거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려고 노력합니다. 또는 어떤 사람이 말이나 육체적인 힘으로 나를 공격하면 거기에 맞서서 자신이 가진 힘을 가지고 싸우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만이 아닙니다. 악마는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악에 우리가 어떻게 맞서서 싸울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 악을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공격할 수 있을까요?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러한 악의 공격에 용기를 가지고 이겨내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싸움을 걸어오는 상대방에 맞서 싸우듯이 공격을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인내와 참을성과 끈기를 가지고 버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힘을 다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서 하느님의 뜻을 붙들고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뜻에 충실했던 분이며 오직 하느님만을 붙들고 살아가신 분입니다.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 되셨다고 해서 악마가 성모님을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뒀을까요? 예수님도 유혹하며 공격해온 악마가 성모님을 가만히 뒀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유혹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악마를 하느님의 힘으로 공격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충실하시며 그 유혹들을 이겨 내셨습니다. 아버지의 뜻 만을 붙들고 계셨기 때문에 악마에게 승리하신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어머니께서도 침묵하시며 마음으로 받아들이신 아버지의 뜻을 꼭 붙들고 계셨기 때문에 악마가 두려워하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 형제 자매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먼저 나가서 어떠한 일을 하시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가서 이웃을 용서하고 돕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전에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먼저 침묵 중에 아버지께 매달리며 자신의 뜻이 아버지의 뜻과 일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당연히 성전을 짓겠다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느님의 뜻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좋은 일이기 때문에 다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하느님의 뜻에 일치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절대 적인 침묵이 필요합니다.
복음에서 성모님께서는 말씀도 많이 하지 않으시고 어떤 활동들도 많이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모습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침묵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그래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계속해서 나서서 어떤 일을 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침묵하시며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하시는 어머니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침묵하며 아버지의 뜻에 일치하는 삶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하느님의 나라에 소음만 일으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당연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겠지요. 다시한번 어머니의 삶이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소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평화가 깃들여진 침묵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통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머니께 우리 모두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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