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전에 잠시라도 오늘 복음 내용을 묵상하셨다면, 아마 누구나 다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을 것입니다. ‘과연 나에게 진정한 보물은 무엇인가?’ 사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것을 쌓는 것에 대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썩어 없어질 것을 당연히 알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노력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에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기 때문에 눈이 맑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루 일상 생활 안에서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하루 종일 십자가나 성모상이나 감실이나 어떤 거룩한 것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맑은 눈은 물리적인 대상을 바라보고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안에 모든 것, 사람들과 재물 등 모든 것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이들은 그런 모든 것을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바라봅니다. 눈이 탁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오늘 열왕기 하권에 나오는 아탈야는 그런 탁한 눈과 몸과 마음이 어둠속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자신의 욕심을 위한 도구로 밖에 보지 않았고, 방해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들, 재물 등,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도구라는 것을 식별해야 합니다. 물론 그 식별도 어두운 눈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눈이 맑아야 하는 것이고, 온몸이 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주님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세상의 삶으로 탁해진 눈이 정화 될 수 있고, 맑음이 지켜 질 수 있는 곳은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주님만을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서 주위에 사람들, 물질적인 것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주님의 은총으로 맑아져 하느님의 시선을 갖게 될 때,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바로 우리 주위의 소외되고 약한 이웃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가장 낮은 곳, 가장 아픈 이들을 애틋하게 바라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웃들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물을 기꺼이 나눌 때, 우리가 매일 땀 흘려 얻은 재물과 시간, 재능을 좀과 녹이 망가뜨리는 '땅의 보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사용할 때, 그것은 도둑도 훔쳐 갈 수 없는 영원한 '하늘의 보물'로 변화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아직 그럴 시간이 없었다면 하루 중에 잠시 멈추어 하느님 앞에 머무는 고요한 시간을 꼭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온전히 바라보는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 세속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탁해지기 쉬운 우리의 눈이 맑게 정화되기를 청합시다.
그리하여 그 시간 속에서 맑아진 눈으로 내 주위의 사람들과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의 맑은 시선과 구체적인 사랑의 나눔이 세상을 밝히는 참된 등불이 될 것이고, 진정한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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