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것이 좋다’ – 해 오던 대로 그냥 계속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변화는 힘듭니다. 더 힘들어 지지 않을까, 더 복잡하지 않을까,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까,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묵이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집에서나 성당에서 하는 일들을 보면 아마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잘 아는 것이 편한 것이지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 왜 제자들이 단식하며 기도하지 않느냐, 왜 먹고 마시기만 하느냐고 묻습니다. 왜 해오던 대로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는 지키는 길이 전통이라고 하면서 지켜오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 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비껴 가려고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들에게는 위협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지켜보자 가 아니라 위협으로 보는 것은 우리 공동체나 사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를 반대하고 새로운 것을 내치는 것은 자신들의 삶이나, 어떤 자리 등 지키고 싶은 것에 위협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물론 모든 변화나 새로운 것이 다 필요하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교회의 본질을 흔드는 변화는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언제나 무조건 안된다가 아니라, 하느님안에서 분별하고 성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가 오늘 1 독서에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말을 들어라’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섬기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하느님의 신비의 관리인이지 어떤 한 사람의 일이 아닌 것이지요.
교회는 변화 앞에서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함께 분별하는 공동체입니다. 무엇이 본질을 지키는 길인지, 무엇이 복음을 더 깊이 드러내는 길인지, 무엇이 공동체를 더 하느님께 가까이 이끄는 길인지 함께 성찰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 신앙은 익숙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부르시는지 귀 기울이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새 옷을 가져오실 때, 우리 삶에서 그리고 공동체에서 새로운 변화를 원하실 때 예전의 것에 새로운 것을 꿰메지 않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 포도주를 헌 포도주 부대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새것을 위해 헌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초대합니다. 묵은 것이 편하다고 해서 머물러 있지 말아라. 새로운 것이 불편하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느님 안에서 분별하며 움직여라.
예수님이 불편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전해 내려오는 전통이든, 하느님께서 가져오시는 새로운 모습이든, 자신의 이득이나 손해를 따지지 않고 온전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에 서 있을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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