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터키 그리스 순례 때 오늘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레오파고스를 가봤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올려다 보이는 작은 바위 언덕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수사학과 철학의 중심지에 살던 사람들에게 바오로 사도는 어떤 생각으로 오늘 사도행전에 나오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것은 하느님의 일이니 듣는 모든 이들이 나의 말을 듣고 하느님을 믿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을까요? 또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저 사람들이 당장 저 많은 우상들을 없애고 하느님께 오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을까요?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을까요?
사실 사도 바오로의 아테네 일정을 성서학자들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전교로 인해 눈에 띄게 많은 이들이 믿게 된 것도 아니고, 큰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지도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도행전에 나오다시피 완전히 아무도 믿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디오니시오, 다마리스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오로는 떠났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이 초기 아테네 교회의 핵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레오파고스의 이 작은 바위 언덕은 우리가 말씀을 전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신앙을 전하거나 올바른 가치를 이야기할 때, 내 논리와 내 언변으로 상대를 당장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장 눈에 띄는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단정 짓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명은 하느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전하는 것'이지, 억지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돌려 세우고 결과를 빚어내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입 밖으로 내는 말은 내 보잘 것 없는 지식이나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욕심의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내 안에서 들려주시는 그분의 언어여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화려한 논리나 언변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이끄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묵묵히 말씀을 전할 때, 비록 사도 바오로가 아테네에 남겨둔 디오니시오와 다마리스처럼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씨앗이라 할지라도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바오로 자신도 자신이 뿌린 그 작은 씨앗이 훗날 어떻게 자라날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실패였다,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변화의 씨앗일지라도, 때가 되면 하느님께서 친히 물을 주시고, 해를 비추어 키워내시며,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성과가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당장 내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성령께 의탁하며 사랑으로 뿌린 그 작은 사랑의 씨앗을, 하느님께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가장 좋은 열매로 키워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가서 말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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