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얼마동안 소공동체 모임에 대해서 신부님들을 초대해서 강의를 듣고, 지난 번에 소공동체 촉진 팀에서 진행한 피정에서 계속해서 강조된 것 중에 인식 변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소공동체의 변화를 위해서 예전의 모습으로 바라보던 그 시선을 버리고 새로운 시선으로 소공동체 모임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식 변화가 없으면 소공동체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따르는 우리의 삶도 옛것을 놓지 않고 반복하는 의미 없는 모습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로 그러합니다.
율법 교사였던 니코데모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태중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라며 자신의 생각과 인간적인 잣대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버려야 할 예전의 시선입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며 편하고 항상 해오던 것, 내가 아는 것에 매여서 다른 것을 보려고 하지 않을 때가 많지 않을까요.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 사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평소의 베드로였다면 예수님께 안 된다고만 했을 것이고, 자신의 말을 듣고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믿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위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성령의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이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없이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서 가능함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목적을 세워 놓고 하느님께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모임을 통해 어떤 열매가 맺힐지까지도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 놓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흔히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부족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마음을 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끝없는 자비를 향해 마음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죄인이 아니라면 자비가 필요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자비와 성령의 바람에 온전히 의탁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구리 뱀이 들어 올려진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시선이 내 한계나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십자가에 높이 들어 올려지신 예수님을 향할 때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처럼 변화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온전히 바라볼 때 이기심과 낡은 관습은 무너지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자기 소유를 고집하지 않는 참된 공동체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생활의 자리는 단순히 의무적으로 나가고 모이는 자리가 아닙니다. 과거의 익숙함과 인간적인 한계를 내려놓고, 성령의 바람에 우리를 내어맡겨 인식을 새롭게 하는,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자비를 향해 마음을 엽시다. 모든 열매를 주님께 의탁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공동체는 초대 교회처럼 참된 사랑과 부활의 기쁨을 증언하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