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다는 것을 유명하지만 사실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사도라고 할 수 있지요. 사람들이 자신이 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잘 믿지 않듯이 토마스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누가 나는 토마스의 자리에 있었다면 다른 제자들의 말을 분명하게 믿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의심하고 있던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라고 하면서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그가 처음에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고백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사람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과연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믿었을까요? 물론 우리의 눈으로 걸어다니는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지요. 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한 예수님을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믿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그냥 역사 책이나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주인공과 만남이 있는 것입니다. 소설은 읽으면 상상으로 주인공을 만나는 것이지만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또한 토마스 사도가 다른 제자들에게 들었던 것과 같이, 우리는 그냥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에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우리가 가서 누군가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얘기만 해 줘도 다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들음으로서 마음이 끌리고, 만남을 통해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비자 교육이나 아이들 첫 영성체나 견진 교육 같은 과정은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듣고 그들을 초대하신 예수님과 만남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각자가 토마스 사도와 같이 믿음을 고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고 퍼져 나갔고 토마스 사도는 인도까지 가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사도들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믿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예수님과 만남은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는 이들에게는 성체 성사를 통해서 분명히 만남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고해 성사를 통한 죄의 용서는 우리가 자비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수 없지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사도들과 같이 먼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간다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주변에 형제 자매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묵상하고, 충실한 기도 생활을 하며 주님을 꾸준하게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삶과 형제 자매들의 삶에 당신의 평화가 머물도록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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