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보다 높을 수 없습니다. 그분 보다 낮아져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얼마나 낮춰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상황을 보면,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에 그들에게 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떠한 낮춤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고 말했다고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위대한 예언자라고 믿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이 그렇게 당신을 낮췄다면 과연 우리가 세례자 요한 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구세주의 길을 준비하러 오신 세례자 요한 보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아니라면 신발끈을 풀어드리지 못할 망정 우리는 왜 예수님 위에 서 있으려고 할까요? 예수님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왜 기도를 안 들어 주시냐고 불평하는 것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나에게 잘못한 형제 자매들도 다 용서 하시는데 우리는 절대 용서 하지 못한다고 하고,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 놓으셨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더 가지고 채우려고 합니다. 말로는 낮춰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삶이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낮춤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을 실천할 때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세상과 너무나 반대되는 모습, 많은 이들이 세상에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온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 세상이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의 모습대로 살아가려는 이들도 물론 행복하지 않습니다. 많이 가지고 남들 보기에 부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행복해 보이는 것은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냥 겉 모습 만일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탑을 쌓았다고 해도 약한 지반위에 쌓아서 무너지기 쉬운 것이지요. 생명이 없는 것에 삶을 쌓아 올리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활시기를 살아가면서 죽음은 없이 부활만 살려고 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분명히 예수님과 같이 죽어야 예수님과 같이 부활 할 수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이 그 길을 가셨다면 종은 따라가야 합니다. 파견한 이가 그 길을 가셨다면 파견된 사람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길은 낮춤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려고 하는 이들은 분명히 당신의 은총으로 도와 주십니다. 당신의 도움이 없이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의 은총에 의지 하며 우리의 나약함을 통해서 파견된 자의 삶을 겸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가장 낮은 곳은 낯선 자리가 아닌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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